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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윤 Jan 27. 2017

딸에게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세상에 행복이 있다면

네가 아닐까


네가 오는 순간

나는 행복에 겨워 어찌할 줄 몰랐어

세상이 바뀌었다고 할까

마치 세상이 새로 생긴 것 같았지


돌 즈음에 아장거리며

말을 시작했을 때

나는 밖에서도 너만 바라보았지


유치원 다닐 때

한복을 입고 생일잔치를 하던 날

그 예쁜 모습을 잊을 수 없어


큼지막한 비디오카메라를 사서

어깨에 메고 다니며

평생 찍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엄마랑 뛰던 네 모습이 눈에 선해

그때 바쁘다는 핑계로

오래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빛도 잘 안 드는 지하 전세방으로 이사 가던 날

금방 다시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그땐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어

풍족한 삶을 위해 뛰는 것이 다인 줄 알았지

같이 있지 못하고

같이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건지 알지 못했어


중학교 다닐 때

나에 대한 서운함이 많았을 텐데

말없이 웃어 주던 너를 바라보는 게 힘들었어

차라리 그때 말을 하지

왜 같이 있지 못하냐고

나보다 소중한 게 무어냐고


나는 너의 어려운 시기를 알지 못해

그게 그렇게 미안해


방학 때마다

너희를 불러다 그 더운 화실에서 일을 시킨 건

그때만이라도 너희들과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야

핑계 같지만 진심이야


너는 배려심이 너무 깊어

그것이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처를

감내해야 하는 네 마음이 안타까워


사람은 적당히 이기적이어야 해

그래야 고통을 줄일 수 있어

나는 유난히 이기적이지만

너도 그건 따라 하는 게 좋아


대학을 졸업하고

힘든 내색 없이 취업을 위해 뛰어다니던 네 모습이 짠했어

당연히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너의 아픔은 알지 못했지

세상이 그런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무책임한 것 같아 말하지 못했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알지 못해

아는 척할 뿐이지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거야


사회생활은 이론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감정적인 거야

인간관계가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지

철학이나 심리학이 중요한 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답을 찾게 해주기 때문이지

한 마디로 너의 처세술이 최고라는 거야


요즘 내가 배우는 노래가 있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

네가 시집가는 날

너와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지

그 날 울지 않고 멋지게 이 노래를 불러 주고 싶어

너에겐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니까

만약 내가 울더라도 슬퍼할 건 없어

내가 워낙 센티 해서 그런 거니까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해

지금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좋은 건 아니지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사랑할 수 없어

항상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게 일생을 아름답게 사는 거 같아

꿈은 꾸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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