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도날드 월쉬의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고서...
1. 신을 찾아서
'신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태초에 인간이 생겨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려 백만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인간이 신을 찾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신을 찾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다.
날씨가 안 좋아서, 기분이 안 좋거나, 몸이 안 좋을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비가 오지 않아 곡식이 타들어갈 때,
비가 너무 내려 모든 것이 떠내려갈 때,
취업이 안될 때,
아침 화장빨이 안 받을 때 조차도
신을 향해 불만을 터트린다.
그렇지만 신을 만나지는 못한다.
신도 생각이 있는데 화가 난 사람 앞에 '쨘'하고 나타나겠는가?
지지고 볶고 저 혼자 화풀이하다가 자포자기할 때까지 그저 놔둘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자신이 신이다.
피조물이 자기에게 삿대질을 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해대는데 어떤 신이 기분이 좋아 대꾸를 하겠는가?
아마 더 괴로우라고 가는 길에 돌부리를 만들어 버릴 지도 모른다.
신에게 이 세상은 마치 아이가 만든 레고월드의 한 부분처럼 장난감일 뿐이다.
당신이 맞이하는 현실이 어떻든지 신의 눈에 아름답지 않으면 치워지거나 다른 역할로 자리를 바꾸기 마련이다. 신을 대신해 세상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걸 '법'이라고 한다.
우리가 신에 대해 반항하고 미워하고 부정하고 해 봐야 돌아오는 것은 더 지독한 괴로움과 고립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신을 만나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소연할 수 있을까?
자 생각해 보자!
신이 내 앞에 나타나게 하는 방법
그것은 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의 의도를 파악했을 때, 비로소 신을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느낄 때 신을 만나게 된다.
이때는 가장 선량한 상태일 것이다.
극적인 상황에서 나타나 구함을 주는 그런 신은 없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성직자'일 것이다.
사기꾼이야 자기의 이득을 위해 거짓을 말할 테고, 성직자는 배운 대로 하는 것이다.
부처나 예수 같은 '성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좀 다르다.
이들은 정말 신처럼 말하고 신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신이 된 것이다.
살아생전에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신의 길로 나아간 용감한 선각자들이다.
'아이구 아부지 감사합니다!'
어머니나 할머니가 간혹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하던 말이다.
우리도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신의 존재는 이처럼 감사할 일이 있을 때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신을 찾아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이 나에게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느낄 때 비로소 진정한 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뜨는 멋진 태양과 밤을 밝히는 수많은 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서 우리를 비추는 것일까?
내 주위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나에게 예쁜 딸과 멋진 아들을 주신 것을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설마 자기 스스로 만들었다고 자랑할 참인가?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부터, 아니 부부가 만나는 것조차도 신의 섭리가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
그 와중에 사랑이 식고 반목하고 헤어지거나, 한평생을 해로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몫이다.
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그것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다.
게으르거나, 판단을 잘못해서 그것을 피하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우선 신이란 존재에 대해 개념을 정립하는 게 오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신은 여러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다. 나라와 지역, 민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신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실제 신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신을 그렇게 묘사하고 만들기 때문에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신은 그냥 존재할 뿐이다.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을 닮지도 않았다.
그저 예술가들의 상상의 산물인 것이다.
정말 행복하려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무것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다.
없는 것은 그냥 없을 뿐이다.
돈이 없는 것은 원래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못난 것도 상대적인 것이다. 비교대상을 바꾸면 못나지 않다는 것을 깨닭게 된다.
무슨 철학가 같은 말투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늘 하는 말이다.
눈높이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내게 주어진 행복한 요소들을 찾아서 행복을 느끼면 된다.
아름다운 아내, 자상한 남편, 예쁜 딸, 건강하신 부모님, 나를 태우고 다니는 차, 싱그러운 아침 공기,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살,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작업, 좋은 내 친구, 내가 힘들 때 쉴 수 있는 공간, 내가 다닌 학교, 내가 자란 고향, 그 과수원 집 딸... 아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불행해지고 싶으면 내게 없는 요소를 찾아 헤매면 된다.
돈, 출세, 멋진 여자 혹은 남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느낄 때 참 불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