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 되기
"좋은 의사"라는 말은 너무 어렵다.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좋은 의사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의사이고 싶다.
오래전 감기에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다. 아파도 병원에는 잘 가지 않는 편이었지만 당시에는 몸이 너무 힘들어 혹시나 다른 병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안고 병원을 찾았다.
진찰을 위해 의자에 앉았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언제부터 아팠어요?"과 "노란 콧물 나와요?" 등 간단한 사실 확인 후, 코와 입을 쓱 보시고 3일 치 약을 처방해주셨다. 2분 남짓한 진료기간 동안 나눈 대화는 채 다섯 문장도 되지 않았다. 혹시나 감기가 아닌 것은 아닌지 증상은 왜 이렇게 심하고 몸은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건조하고 간단하게 진료를 마치시는 선생님을 대하면서 나 또한 무심한 환자가 되어 진료실을 나왔다.
뼈를 공부하는 골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부와 각종 시험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어느덧 훌쩍 지난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좋은 의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아툴 가완디 저,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미국의 한 외과의사가 의료현장에서 느꼈던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을 통해 선배 의사들은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괜찮은" 의사란 어떤 의사 일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때 정리해 두었던 학생 의사의 고민과, 마음에 담아두었던 책 속 구절을 여기서 다시 되새겨 보려 한다.
의사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
그렇기에 학생 시절에는 시험과 성적에 목숨 걸기보다는, 나와 의사-환자 관계를 맺을 환자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힘들더라도 성실하게 지식을 쌓기 위한 "참 공부"를 해야겠다는 책임의식에 대해 고민해보았던 것 같다. 참고로, 의학 공부는 시험을 위한 족보 치기와 공부를 위한 참 공부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물론 쉽진 않았지만, 환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 자신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생 시절을 보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좋은 의사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정답을 내려줄 수 있는 의사일까? 하는 의문이 들던 찰나에 접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좋은 의사라고 늘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사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새로운 사고란, 뛰어난 지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성격의 문제라고 말한다. 마음에 쿵~하고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인 지적이었다. 똑똑한 의사가 되기 위해 주위와 경쟁하며 스스로를 걱정했던 나에게는 오히려 단비 같은 말이기도 했다. "결점을 감추려 하기보다는, 실패를 인정하고 천천히 반추해보며 새로운 해답을 찾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새로운 사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아툴 가완디는 말한다. 동기들이나 교수님 앞에서 틀리는 것에 부끄러워하고 결점을 숨기는데 급급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럼 좋은 의사란, 학문적으로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요, 실패하더라도 이를 발판 삼아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의사일까?
질병과 싸우는 일은 유전자나 세포와의 씨름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설정을 우선으로 한다.
각각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이 과연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느냐,
의사가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느냐,
올바른 진단을 내렸느냐, 올바른 치료를 했느냐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영역에는 완벽한 공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인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 설정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기 쉬운 현실인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의사는 환자와 라뽀 Rapport를 잘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3학년이 되어 임상술기나 환자 진료에 대해 배우며, 좋은 의사는 친절한 의사일까? 그럼 친절한 의사란 상냥한 말씨로 환자와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는 의사일까? 고민한 적이 있다.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답을 모르겠다. 글쎄.. 아직 더 알아가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른만큼, 우선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열심히 마음을 공부하려 노력하는 중이기도 하고.
수없이 밀려드는 의학공부에서 엄청난 공부량 때문에 스스로와 싸우고 타협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성적에 스트레스받고 나와 동기를 저울질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이래서 좋은 의사는커녕, 의사가 될 수나 있으려나, 돌팔이는 면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이 두려움에 단호박 같은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천재성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도덕적 투명함이다. 새로운 사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꺼이 하려는 자발성이 필요하다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학문적 지식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환자와 동료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의 성실함과 자발성.
선택과 고민의 순간에서 기준이 될 수 있는 도덕적 투명함.
결점이나 실패에 부딪혔을 때 회피하지 않는 새로운 사고.
아직 초보 의사이기에 이 세 가지가 얼마나 어려울지 감히 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늘 마음에 품고 되새기고 싶은 말들이다.
한 가지 더,
존경하는 내 스승님께서,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마음먹었던 시절부터 내게 해주셨던 말씀을 이곳에 나누고 싶다.
一口二足三藥六技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첫째가 환자와 대화하는 입이요,
둘째가 환자를 위해 열심히 발로 뛰는 것, 셋째가 약이고,
여섯째나 돼야 술기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정리해 두었던 메모에 있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 간절히 바라는 점은, 가운을 입고 처음 시작할 때의 흥분과 설레는 마음을, 의학과 환자에 대한 꾸준한 성실함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