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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의사 Mar 21. 2018

엄마라는 이름으로 견딘 말의 무게

결혼을 준비하는 못난 딸이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속마음   

오랜만에 집에 가기 위해 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나는 엄마가 해준 "닭도리탕"을 먹으려 집에 가는 길이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엄마와 크게 다퉜다. 바쁘다는 핑계하에 전화로 나눈 대화 속에서 날 선 말들이 오갔고 나도, 엄마도 화가 났다.


엄마가 계속 그렇게 얘기하면 나 엄마 안 보고 싶어


안 보고 싶다는 그 한마디가 가진 말의 무게를 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안 보고 싶다고? 너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니, 엄마가 너 키우면서 정말 힘들었어. 그러면서 너 안 보고 싶을 때 정말 많았어. 엄마가 너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봇물 터지듯, 엄마는 울음을 왈칵 쏟아내셨다.


처음이었다.

엄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름 모를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엄마를 더 이상 안 본다는 말이 아니라, 이번 주 주말에 집에 안 간다는 말이었다고 허둥지둥 둘러대며..


엄마가 눈물로 쏟아낸 단어들 사이에 깊은 서운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한없이 이해해주고 받아 주는 존재여서 그랬을까? 너무도 당연하게 엄마도 서운한 감정이 들 수 있다는 걸 잊고 살아왔다. 새로운 사랑을 앞에 두고 엄마의 사랑은 모른척했던 내가, 엄마는 진심으로 서운했던 거였다.     


엄마는 나에게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감사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엄마가 가르쳐주신 대로 노력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엄마한테만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다 받아주는 사람이니까.

사랑한다는 표현은 자주 했지만, 엄마에게 배려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엄마는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먼저 양보해주니까. 엄마의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엄마니까. 그리고 그 사랑은 한없이 받기만 해도 되는 건 줄 알았다. 엄마의 감정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엄마는 날 사랑하니까. 엄마는 날 이해하니까 내 짜증도 분노도 다 받아줄 테니까.  


엄마의 진심 어린 서운함을 마음 깊이 느끼며, 처음으로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라 낯설었고, 부끄러웠다.

엄마의 서운함이 보이니 그제야 엄마도 마음 여린 여자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라는 이름하에 엄마가 참아왔던, 포기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머리를 스치며 코끝이 찡해졌다.


커오면서 몰랐던 엄마에 대한 사실을 점점 알아가는 중이다.

엄마가 빵 같은 디저트는 잘 드시지 않아 별로 안 좋아하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도 예전엔 빵순이였어~"

어느 날 뜬금없이 예쁜 화장품 파우치를 건네시며,

"너무 예뻐서 딸 주려고 샀어~"

하시는 엄마를 보며, 아 엄마도 이런 소녀감성이 있었구나..  


엄마에게 눈물을 쏟게 한 후에 내가 무심코 전한 말의 무게를 느끼며 알았다.

여자이기 이전에 엄마이기에, 엄마가 참고 견뎌왔던 것들에 대해 이제는 감사하고 엄마를 배려해야겠다고.




엄마가 만든 "닭도리탕"을 먹으러 집으로 가는 길.

내 마음을 들킨 건지, 갑자기 차에서 가수 왁스가 부른 "엄마의 일기"가 흘러나왔다. 멜로디만 들었는데도 벌써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음악을 껐다. 촉촉해진 눈으로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걱정부터 할게 분명하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엄마와 3시간 정도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집 밖을 나서며 사랑을 가득 담아 엄마를 꼬옥 안아드렸다.

다시 차로 돌아가는 길, 어둑한 밤인데도 엄마는 베란다에 나와 손을 흔들며 "운전 조심히 해~" 하신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시 노래를 켰다.

너그럽게 웃으시던 당신에게서 따듯한 사랑을 배웠죠.
알아요 내 앞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강한 분인걸,
느껴요 하지만 당신도 마음 약한 여자라는 걸,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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