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Ego) 속 성냄과 두려움의 의미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의 유형을 보게 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며 좋은 점은 배우기도 하지만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남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과연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나 또한 화가 많다는 걸 일상에서 종종 알아차릴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명상 수업에서 ‘화’를 배웠다. 그리고 그 ‘화’는 강한 에고(ego), 즉 자아에서부터 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처음 제기한 단어 ‘에고’는 합리적인 사유를 갖춘 이성적인 자아를 뜻한다. 이 말은 곧 계산적인 사람이란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가령 같은 부서의 직원이 급한 일이니 도와달라는 말을 했을 때 즉각적으로 바로 도와주기보다 ‘내가 도와주면 다음에 저 사람이 날 도와주겠지?’하는 마음으로 도와줄 때 이를 에고의 모습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이성적인 인간을 지향하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프롬은 존재하는 건 “에고의 감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유를 줄일수록 존재가 더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프로이트와 프롬의 해석으로 바라본 에고는 이성적인 인간에 더 가까움으로 에고가 강하다는 건 결국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나’에 대한 집착이자 나에 대한 높은 기대와 욕심인 걸 알 수 있다.
내가 화가 많은 건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내가 손해 본다고 생각했을 때, 혹은 남이 내게 상처를 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타인에 대한 기준, 나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것뿐이고, 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나를 끔찍하게 여겨 화를 낸다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화를 낼 땐 나름 이성적인 인간이라 생각해서 늘 화를 낸 명분을 찾는데, 그 명분이 정당하다며 자신을 속인 경우도 꽤 있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명분을 찾는 사이클이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가 되니, 지금이라도 이 사이클을 멈추고만 싶었다.
명상 수업 중 소장님이 말씀해준 아메리칸 인디언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늑대 이야기를 해준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는데, 한 마리는 화가 많고 연민도 많으며 수동적인 늑대고, 다른 한 마리는 선하고 걱정이 별로 없으며 남을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큰 늑대다. 이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질문한다. “누가 이겨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네가 먹이를 더 주는 놈이 이기지”라고 답한다. 화는 한번 시작하면 더 이상 줄이기 어렵다. 화를 조절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너그러운 마음을 키우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너그러운 마음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바로 나에 대한 기대, 에고를 내려놓는 것이다. 기대를 없앨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게 나처럼 버겁다면 무겁고 강한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내가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일기를 쓰는 나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화가 났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왜 화가 났는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기대와 욕심은 무엇이었는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나부터 변한다면, 너그러운 마음이 내 주변을, 다수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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