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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 Apr 23. 2021

태일 : 죽음보다 뜨겁던 삶을 기억하다

공연 그리고 원작


내일이 되면 행복해질거야
내일이 되면 우린 부자될거야

- 내일이 되면, 음악극 <태일>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 불린 것이 한 두해 일은 아니다. 얼마 전 부동산 불로소득이 2019년 352.9조 원으로 지난 13년간 GDP 대비 불로소득 비율이 16.2%라는 기사를 보았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주식과 코인 공화국의 임계점을 향해 뜨거워지고 있다. 노동 환경을 떠나 불로소득의 나라로 향하는 기차에 하나둘 몸을 싣는 이 시기에 노동 열사 전태일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진다. 이 시대의 노동자들은 어째서 불로소득이라는 단어가 꿈이자 종착역이 되었는가. 노동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다 주기에. 50년 전 불타오른 전태일의 뜨거운 불꽃은 지금 어디를 비추고 있을까. 


21세기에도 산업재해와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뉴스에 보도되지만, 높으신 양반들은 그들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전히 명함과 간판이 사람의 위치를 말해주며, 낮은 자이던 높은 자이던 현실에 안주하는 톱니바퀴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천국을 쌓아 올리며’ 살아간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전태일 평전> 조영래, 2020,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불꽃으로 타오르기 전에


©플레이더상상


2020년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였다. 어릴 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마지막 장면이 가장 강렬해서였는지, 불이 되어 타오르던 장면과 흑백영화였다는 사실만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가끔 청계천 다리 위를 지날 때 그의 동상을 마주치면서 '이런 대단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람이 존재했었지'정도의 인지만 겨우 할 뿐이었다. 50주기가 1년이 지난 후에야, 부끄럽지만 음악극 <태일>이라는 공연을 통해 그의 죽음이 아닌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악극 <태일>은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극으로, 뮤지컬과 연극 중간쯤 되는 듯한 형식을 띄고 있다. 태일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남배우 1명과 태일의 주변 인물을 연기하는 여배우 1명이 합을 이룬다. 내가 본 날의 캐스팅은 매체와 무대 연기를 오가며 낯익은 얼굴이었던 ‘강기둥’배우와 작년 연극 <오만과 편견>으로 내게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겨주었던 ‘백은혜’배우였다. 강기둥 배우는 순박한 눈매와 둥글둥글한 인상이 태일과 꽤 닮았다. 백은혜 배우는 태일의 어린 여동생부터 어머니와 아버지, 재단사 친구까지 남녀노소 경계 없이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극을 보기 전에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먼저 접했다. 유튜브에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KBS본부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아나운서들이 낭독해주는 오디오북이 있다. 정신 없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들었지만,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로 들으니 꽤 몰입할 수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통한 장면에서는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는지 모른다. 책을 읽을 여건이 안된다면, 이 오디오북을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가냘픈 삶을 지탱해주던 유일한 꿈


1969년, 청옥고등공민학교 동창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 ©전태일재단 http://www.chuntaeil.org


태일은 지독한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태어났다. 정말이지 사람이 이렇게까지 궁핍할 수 있다니... 빚더미에 앉아 술주정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아버지, 그런 남편 옆에서 점점 정신을 잃어갔던 어머니, 게다가 줄줄이 딸린 동생들. 당장 하루 밥 한 끼 먹는 것 조차 막막하고, 나무 판때기로 만든 집에서 아니 집 같지도 않은, 몸뚱이 하나 펴지 못하는 공간에서 매일밤 추위에 떨며 잠을 청해야 했다. 결국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하고, 신문팔이와 장사를 하며 겨우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니 영양이 부족해 키도 작고 왜소했던 어린 소년에게 삶이란 너무도 가혹한 징벌과도 같았다.


그런 태일의 짦은 생애 중에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바로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니던 때이다. '공민학교'는 당시 불우한 사정으로 인하여 정상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기초교육을 실시한 학교이다. 태일의 수기에 따르면, 이때만큼은 하루하루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짓눌렸던 가슴이 청옥에서 다시 자라나는 것 같다며 '살아있는 인간임에 감사하다'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청옥은 아마 청년 태일에게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집의 가세가 다시 기울어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청옥마저 중퇴해야했지만, 태일이 계속해서 배움에 대한 꿈을 놓지 않으며, 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갓 취직했을 때 동료 시다, 미싱보조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전태일재단 http://www.chuntaeil.org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17살의 태일은 평화시장에 '시다'로 취직을 했다. 하루 14시간 넘게 일하여 일당 50원. 우동 몇 그릇 사먹으면 금새 털릴 돈이다. 하지만 얼른 기술을 익혀서 미싱사, 재단사가 되어 어머니께 효도하고 동생들도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 희망도 잠시, 태일은 가난한 자들이 그저 부자들의 거름 밖에 되지 못하는 사회구조를 깨닫는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창문 하나 없이 허리도 제대로 못펴는 어둡고 좁은 다락방, 쌓여있는 작업량으로 잠시 화장실 갈 틈도 없다. 노동자 중의 가장 우두머리인 재단사, 그 위의 공장주가 노동을 착취하고, 더 위에는 노동청을 비롯하여 무관심한 국가기관과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약한 자도, 강한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든 구별이 없는 평등한 인간들의 서로 간의 사랑이라는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 덩어리가 없기 때문에 부스러기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 그것을 그는 바랐다.

<전태일 평전> 조영래, 2020.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태일은 재단사가 된 후에도 어린 여공들의 고통에 누구보다 마음으로 함께 아파했다. 근로기준법 책을 읽느라 밤을 지새우며, 노동운동을 결심한다. 재단사들을 모아 '바보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인간애를 향한 저항정신을 실천으로 옮긴다. 자발적으로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모범업체 설립을 계획하며, 세상에 이 참혹한 현실을 폭로하여 실질적인 개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저항하면 할수록, 더 거대하고 견고한 계급사회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 13일. 태일은 한 손에 근로기준법 책을 든 채로 그렇게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짧고 강렬한 스물 두해의 삶이 끝나는 순간, 그의 마지막 말은 “배가 고프다”였다. 배고픔으로 시작해 배고픔으로 끝나버린 그의 삶. 단 하루도 배부르고 등 따스웠던 적이 없었다. 오로지 꿈만이 가냘픈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다.





 

소년은 달리고 달려
눈썹이 휘날리도록
심장이 터질 때까지 계속 달리네

- 청옥이 좋아, 음악극 <태일>


음악극 <태일>은 그의 죽음보다 삶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투쟁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결심까지 고르게 다루려고 노력한 것 같다. 특히 어린 소년의 풋풋함이 묻어난 장면과 넘버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학교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소년의 눈망울은 암흑 속 별처럼 초롱초롱하다. 극이 진행될 수록 초들이 점점 불을 밝혀 무대를 가득 채우는데, 태일이 얼마나 따뜻하고 인간애가 있는 사람이었는지 느껴진다.


사실 무지 슬플 거라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었다. 다행히도 약간의 이머시브(관객이 무대 위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극의 형식) 진행 덕분에 적당한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배우들이 역할에서 잠시 나와 본인이 되어 관객들에게 질문이나 이야기를 건넨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관객들이 직접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들이 느꼈던 일상의 소중함과, 고마움, 그리고 원동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책과 극을 보고 나니 그의 업적을 단지 분신 항거로만 기억한 것에 대한 부채감이 든다.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실행하는 전략가였고, 사람들을 연대하며 과감히 앞장서는 리더였다. 자신보다 더 낮은자의 고통을 못 본 체 하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박애주의자였다. 실패라는 쓴 맛도 보았지만, 실패는 오히려 그의 신념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들에게 숙제가 있다면 그가 불꽃이 되어 사라진 순간 이전에 훨씬 더 길고 뜨거웠던 시간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내 옆에 빈 의자를 만들어두어야겠다. 그가 영원히 우리 사회 전체의 일부로 남을 수 있도록. 그가 힘에 겨워 굴리다 못다 굴린 덩이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그저 일하는 도구 그 이상으로 대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무기력에 잠긴다. 갑질을 밥 먹듯이 당하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직업군, 산업재해나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 티끌 모아도 티끌이라 집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 채 영끌’해서 주식과 코인에 올인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나라가 내놓아야할 해답은 ‘노동’하기 좋은 나라, ‘근로소득’만으로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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