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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Dec 31. 2017

갈등과 해결방법에 관한 반성문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을 두려워 말자.

분쟁을 두려워한다.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주변 사람과 의견이 다를 때 내가 처한 상황보다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고 쉽게 승낙한다. 수락의 정도를 부등호로 표시하면 나와 가깝지 않은 순서로 부등호가 열려있다. 나 <남편 <아이 <가족 <친구 <사회에서 만난 사람 <간혹 본 사람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좋아하는 연예인과 같은 식이다. 평화주의자는 이러한 나를 좋게 표현한 것이지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내막은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겪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한 자다.  

  

난 어렸을 때부터 웃음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쉽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며 어려운 상대일수록 웃음을 실실 흘렸다.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친절함과 수줍음을 적절히 섞어 내 웃음의 양을 조절했다. 나를 찍은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그러한 능력이 본능적으로 가능한 것인 줄 알았다. 

  

동물을 직접 만지며 교감하는 취지의 어느 동물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당시 나는 세 살인 쌍둥이들을 나의 양쪽 팔에 각각 안고 조련사가 보여주는 앵무새, 토끼, 뱀 등을 아이들에게 만져보도록 유도했고, 그 장면을 친구가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나를 찍은 영상을 보는 것은 오글거림과 닭살을 안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이었다.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뒷전이고 “괜찮아, 만져봐”를 반복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동물들에게도 친절했다. 살짝 떨리는 하이 톤의 목소리는 아이들이 혹여 기대 밖의 엉뚱한 행동을 할까 봐 노심초사 걱정하는 맘을 증명했고 무엇보다 카메라를 힐끗힐끗 봐가며 렌즈에 비친 내 모습을 의식하고 있었다. 나를 향하는 것이 무엇이든 사람, 동물 심지어 기계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시선을 의식하고 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보여주러 간 엄마의 태도로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에 비친 모습을 계산하며 연출하는 엄마 역을 맡은 연기자의 모습이었다.

   

잘하고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나의 미소가 나를 배신한 그날, 처음으로 웃음에 대해 반성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왜 웃고 있는 걸까. 어떻게 그 지경까지 진행되어 왔는지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실제로 좋은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늘 인정받고 싶었다. 인정받을 일이 별로 없거나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람'은 결국 나의 '못남'을 드러낸다. 마음속에서 우러난 웃음이 아닌 얼굴이 만들어낸 웃음이 인지 불가 습관이 되기까지 그것은 본질을 벗어나  "성격이 좋다"는  인정을 선사했고 좋은 첫인상이란 보너스를 더했다. 순간의 달콤한 칭찬을 위해 마음과는 다른 항상 웃는 모습을 취했던 것이다.

    

슬픈 이야기다. 여전히 갈등 상황에 놓여있을 때 재빨리 인지하지 못한다. 나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주변의 상황을 고려해 좋은 결과를 미리 정한다. 좋은 결과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실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과 사건의 전후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나는 (가능하지도 않은) 중립을 공식 선포한 후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며 웃음으로 사건을 급 마무리한다. 갈등 해결이 아닌 급 종결이다. 그리하여 외적 갈등은 유보되는 것으로 보이나 그것이 내적 갈등의 불씨로 번진다. 갈등 상황에서의 웃음은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심과 본질에 다가가지 못해 갈등 해결의 방해꾼으로 전락한다. 거기에다 목적한 대로 갈등 상황이 종결되면 그만인데 예정된 후회를 반복한다. ‘그때 거기서 “OOO(땡땡땡)”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싸움을 피하기 위해 진정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나는 후회와 자괴감에 밤잠을 설친다. 그로 인해 쌓인 분노는 적절히 희석되지 못해 가까이 있는 아이나 남편에게 분출하는 ‘짜증 기폭제’가 되니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고 참담하기까지 하다. 애초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해 지은 웃음이었나?

    

갈등과 분쟁을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다. 갈등의 상황에 놓일 때 전체적인 상황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의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선택의 순간에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비단 ‘거래’에서만 성립하는 조건은 아닐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용기를 내어야 한다. ‘웃음’으로 대충 때우는 태도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일이면 맞이하게 될 '마흔'이 내게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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