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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Dec 31. 2017

제사

지금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잇는 끈에서 출발해야......

3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암이 재발하여 투병하시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생을 마감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 아버님의 영정 사진을 찾겠다고 어스름한 새벽에 집으로 간 사이 아버님은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보지 못했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는데, 난 무엇을 준비한 걸까. 삶과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아버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영정사진 규격에 맞게 편집을 하면서 돌아가신 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난 아버님의 ‘생(生)’보다 나의 ‘다음 일정’이 더 중요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남편은 할머니의 제사를 자신의 엄마가 모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다. 할머니의 딸들과 막내아들(즉, 남편의 고모와 삼촌)이 살아있고 그들이 할머니와 더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남편도 없는 ‘며느리’인 엄마가 제사를 모셔야 하느냐고 따졌다. 한편으론 이 집안의 며느리로서 안심했지만 지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제사를 모시는 친정 집 기준으로는 남편이 이상했다.


종갓집인 내 원가족의 집은 늘 제사 풍년이었다. 좁은 집에 발 디딜 틈이 없어 일면식도 없던 먼 친척들이 현관 앞 계단까지 삼삼오오 모여 서 계시던 단상이 있다. 엄마가 나의 증조할머니의 제사를 처음 가져온 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며느리로서 자신의 위신을 ‘제사’를 통해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 후로도 아빠는 제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데 엄마는 평가받는 학생처럼 한동안 제사를 성심을 다해 모셨다. 20년이 흐른 지금의 엄마는 직장을 퇴근한 후, 시중에 파는 ‘동그랑땡’을 사서 기름에 잘 익힌다. 손 수 찹쌀가루를 빻고 그 반죽에 직접 쪄서 찧은 팥 앙금을 넣은 뜨거운 기름떡을 맨손으로 정성스럽게 부치던 음식 같은 것은 이젠 없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의 방문은 제사를 모셔오던 첫 해가 마지막이었다. 친척들은 제사를 넘기자마자 자신의 삶으로 바로 돌아갔는데, 엄마는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해지는데 20년이 걸렸다.

  

김두규(우석대 교양학부 교수)가 게재한 조선일보 칼럼에 따르면 제사에 대해 최근 퇴계(이황)와 고봉(기대승)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 글에 ‘4대(고조)까지 모셔야 하느냐, 3대(증조)까지 모셔야 하느냐’, ‘집안이 가난하면 어떻게 4대까지 모시겠느냐’, ‘윗대 어른이 살아계신데 이를 무시하고 장손 혹은 증손이 제사 지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등의 논제를 발견했다 한다. 윗대가 생존해 있으면 마땅히 그 일족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단다. 맏며느리(종부)에게 제사를 모시게 하는 것도 이치가 아니라 했다. 본디 맏며느리에게 제사를 주관하게 함은 그녀가 과부로 내쳐지는(혹은 홀대받는) 것을 우려해서였단다. 그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형식에 치우친 제사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는 같다. 그러나 현재까지 오는 과정에서 변질되어 그렇다고 믿고 행해져 오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칼럼을 읽고 깨달았다. 남편의 생각은 불만을 표현하는 데 그치긴 했지만 옳았다는 것. 엄마는 제사에 올리는 음식 준비로 며칠 간의 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버리고 형식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준비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음을. 난 ‘장례식’과 같은 형식보다 ‘살아있는 순간’에 잘 했어야 했다는 것을.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이자 후회임을 인정했다.

  

아버님 제사와 추석이 가까워 ‘제사’와 ‘차례’를 이어 치른다. 작년까지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보단 우리나라 풍속에 맞는 음식을 놓고 절을 한 후 마음을 다했다 생각했다. ‘아버님’에게 집중하기보다 ‘제사’라는 형식에 치중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모인 ‘제사’의 목적은 호스트는 물론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분’과 ‘지금 삶을 사는 사람’을 잇는 끈에서 출발해야 그 마음이 닿는 것이 아닐지…… ‘장손’, ‘어동육서(魚東 肉西)’ 따위에 있지 않다. 내 마음속에 이미 있는 그분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금년 제사에는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파리 바게트 찹쌀 도넛’을 올렸다. 그리고 ‘설탕 두 스푼을 넣은 커피’를 상에 놓았다. 물론 어머님께서 차린 상에 수저 하나 더해 올리는 것이다. 어머님도 남편도 이런 생각을 한 나를 다행히 좋게 봐준다. 내 삶의 일부 차지했던 아버님을 제사상에 채우고 싶다는 맘을 먼저 헤아려주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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