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니콜라이 고골, 문학동네, 2016)
아이들 대부분의 옷을 얻어 입혔다. 그러나 '외투'만은 브랜드 옷을 사 입혔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멀쩡하면 스스로 만족한다. 나 또한 속옷을 세트로 맞춰 입은 적이 없다. 밖으로 보이지 않는 것, 남들이 봐주지 않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러시아 현대문학의 거장,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외투』 (문학동네, 2016)는 권력, 돈 앞에 작은 사람 '아카키 아카키 예비치'의 일생을 그렸다. 표지를 보면 외투를 걸쳤다기보다는 큰 외투 안에 쏙 들어간 작은 체구의 '아카키 아카키 예비치'가 있다. 마음도, 체구도 모두 작다. 책 두께도 얇다. 그런데 울림은 크다.
주인공에게 외투는 그가 아껴 쓴 전기, 물, 촛불이었다. 행여나 닳을까 아껴 입은 속옷이었다. 차곡차곡 모아 꽉 찬 저금통을 뜯기 전, 모인 액수에 대해 갖는 기대였다. 그의 직업인 “정서하는 일에서 다채롭고 즐거운 자신 만의 세계를 발견”(p.15)한 그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즉, 전부였다. 아끼고 모으고, 몇 달치 월급까지, 자신이 가진 걸 다 바쳐 외투 하나를 구입했으니까.
삶에서 이토록 애정을 가져 본 일이 있는가. 주인공에게 열성에 걸맞은 상을 주었다면 9급 문관에서 5급 문관으로 고속 승진이 가능할 거라는 작가의 평처럼 ‘정서하는 일’은 그 자체로 그에게 생동감을 주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이상의 행복한 감정이 또 있을까.
나는 단순히 정서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그의 삶이 부러웠다. 그러나 '외투'를 소유하자마자 그는 변한다. “이때부터 그는 존재 자체가 더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인생의 반려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p.33)
아! 아! 인생이여. 인간은 이토록 적응에 탁월하여 가난해지고 마는 것인가? 무엇인가를 소유하면 이 전의 '소중함'은 잊히고 마는가! 만약 외투를 뺏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외투를 입는 순간, 정서하는 일에 흠뻑 빠져 일했던 기쁨이 사라졌으니 자신의 반쯤은 잃어버린 사람이었을 게다. 이렇게라도 그의 상실을 위로하고 싶다.
그가 가지지 못했던 결핍(외투)을 채우려 하지 말고 강점(정서하는 일)을 살리라고 했다면 달라졌을까?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자기만족을 위해, 자신만을 위해 일부러 서류를 베껴 적을"(p.17) 그를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일로 충만한 사람이었을 테다. 그러나 외투가 없어서 추위에 떨다 얼어 죽는 결말을 맞았을지도. 애초에 외투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외투 하나 마음대로 사기 힘들고 가질 수 없는 형편을 어디에 하소연한단 말인가.
다시 나의 외투를 본다. 브랜드의 가격으로 '급'을 보여주던 외투. 주인공이 모든 것을 걸어 산 외투에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저급했다. 급을 따졌던 인간으로서 ‘아카키 아카키 예비치’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
주인공이 삶의 일부를 걸어 구입한 외투는 끝까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듯 도둑을 맞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간은 비로소 죽어야만 완전해질지도 모른다는 고골의 반전을 꼭 확인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