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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Dec 28. 2018

김포와 비행기

사소한 발견

김포에 터를 잡고 누빈 게 4년이 되어 간다. 연고가 없어 살아본 후 괜찮으면 쭉 살아야지 했는데 두 번째 재계약을 하게 됐다. 결혼 후 10년간 5번 이사 후 6번째 집이다. 우리 집을 가져본 적도 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실제 산 기간은 고작 1년이다. 재계약도 처음이었는데 또 연장한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신도시와 구도시 재정비로 새 아파트들이 늘어나니 전셋값이 그대로다. 열혈 워킹맘으로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직장 옆인 강남 끄트머리에 살았었는데 집 대여료는 이 곳의 두배가 넘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두 배의 곱절은 될 것이다. 같은 가격으로 몇십 년 젊고 두 배 넓은 집에 뒹굴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복이었다.

김포에 오기 전까지는 김포공항이 김포에 있는 줄 알았다. 그곳은 제주나 일본을 오갈 때 거치는 비행기 정류장에 지나지 않았다. 정류장은 화장실만큼이나 관심이 덜 간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비행기 탑승부터지, 정류장 도착부터라 여기지 않는다. 김포공항은 지나치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김포에 살게 된 후에야 김포공항의 행정구역은 서울특별시임을 알게 됐다.

서울특별시에서 36년 살았다. 특별시는 특별한가? 그곳에 살 때는 모른다. 떠나봐야 안다. 또한 특별시에 산다고 해서 내가 특별해지는 문제와는 별개라는 것도 그곳을 떠나야 안다. 뭐든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 그런데 김포는 달랐다. 내가 그곳에 있다기보다 김포가 먼저 내 맘에 들어왔다. 그러니 소소한 매력이 크게 보이고 매력적인 이곳에 살고 있는 내가 비로소 특별해진다.

공원에 있다 보면 1분에 한 대씩 비행기가 날아다니는데 이 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소음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비행기를 보는 행복감이 소음을 앞서게 됐다. 비행기를 보면 주위에 아는 사람이 있다거나 하는 창피함의 조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참새보다 작게 보이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댈 정도로 매 순간 반갑다.  물론 우리 집에서는 심각할 정도의 소음이 없어 이런 만용을 부리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가 무슨 생명체 같다. 멀리서 듣는 비행기 소리는 거대한 바람소리 같다. 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바람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것 같다. 김포든 인천이든 가까우니 물리적 거리가 좁혀 든 만큼 맘만 먹으면 공항으로 곧장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육중한 몸의 생명체가 날아갈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설렘이 모두 내 것이 된다.

중봉도서관에 자주 가는데 그곳에서는 비행기가 아주 낮게 날아간다. 비행기의 아랫부분은 마치 새의 불룩한 배 같다. 또는 갓 출산한 개가 어린 강아지들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드러낸 속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깝게, 자세히, 신기하게 쳐다본 건 두 경우뿐이다.

김포에 이사 온 김에 비행기를 더 자주 타겠다고 다짐했다. 자주 보니 흔해진다. 흔해지니 쉬워진다. 그렇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국적기는 거의 못 탄다. 저가항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노린다. '돈이 생기면 여행 다녀야지'라고 생각하면 이미 우리 부부는 늙고 아이는 우리와 더 이상 놀아주지 않을 것이다. 주황색 무늬의 하얀 배를 가진 작은 비행기를 타고 다섯 번째 괌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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