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삶
1. 행복은 쿠키다. 쪼개고 으깨고 부셔라.
'행복은 작은 것에 있다'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행복의 단위를 줄여라' 이것도 별로다. 측정이 가능하지 않으니 단위는 애초에 없다. 좀 더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행복을 먼 데서 찾지 마라' 이 말도 부정으로 끝나는 게 맘에 안 든다.
그래서 행복을 내가 좋아하는 쿠키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친근하다. 가깝다. 달콤하다. 한 입 크기가 딱 좋다. 행복의 기준을 집이나 사는 구역과 같이 범위를 크고 넓게 가질수록 우린 거기에 닿을 수 없어 점점 멀어지는 법이다. 행복을 추상어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먹는 걸로 개념을 아예 바꿔 버리니 어렵지도 않다. 이젠 언제든 손쉽게 먹을 수 있다.
군것질하듯 자꾸 행복 거리를 찾게 됐다. 아이들이 하는 말, 대화, 미소, 남편과 함께 하는 것, 블로그, 다북다독 독서토론, 글쓰기, 보고 싶은 친구와의 만남, 카톡, 술 약속 등. 우리 주위엔 너무나 많은 행복들이 널브러져 있다. 행복의 기준을 쪼갤수록 좋다. 아예 부스러기로 만들어야 사소한 것에 기뻐할 수 있다.
2. 편견도 지속적으로 쪼개기
40년 살아보니 나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구축했던 성벽이 견고하고 불필요하게 높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편견은 작은 단위로 부수자는 의미의 쪼갬은 아니다. 금이 쩍쩍 나게 갈라서 없앨수록 좋다는 얘기다. '판단'보다 '받아들임'이 앞서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독서토론을 통해 터득 중에 있지만 나도 아직 한참 멀었다. 편견이 많고 강할수록 관련 분야나 현안에만 집착하게 된다. 굳어지는 건 손발톱, 발뒤꿈치의 굳은살이면 충분하다. 생각과 마음만은 타인과 소통하는 말랑한 사람이고 싶다.
3. 뭐든 해야지. 그렇다면 하루 단위로!
뭐든 해야 한다.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도 않는 나에게 "허영이면 어떤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올 해의 잠언이 되었다.
'매일 쓰기', '100일 쓰기', '50일 다이어트'와 같이 목표를 길게 잡으면 늘 실패했다. 하루 단위로 끊어 산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하고, 사고 싶은 게 있음 지금 당장 산다.(후회가 따르지만 안 사도 후회한다.) 걷고 싶음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간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 달걀을 삶고 운동복을 입는다. 하루살이로 사는 것이 나에겐 더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된 한 해였다.
데자뷔처럼 오래전에도 이런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느낌일 뿐 기억은 전혀 없다. 하루살이로 살아야 할, 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소한 부탁>(난다, 2018)의 저자 황현산 선생심이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도끼'같은 적절하고 필요한, 짧지만 강한 문장이지 싶다. 난 사소한 것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다. 사소한 것에 성공해서 기쁨을 누리고 싶다. 소박하게 소심하게 소중하게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고 싶다.
2019년엔 좀 더 사소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