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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Jan 04. 2019

사랑해야 한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손열음, 중앙북스, 2015)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음악’이라고 말하겠다. 그림은 보이는 대로 묘사하거나 설명하면 되고 문학은 요약하면 된다. 그러나 음악은 어쩌란 말인가. 고작 생각할 수 있는 건 계이름을 쓰거나 대중가요의 경우 가사를 베끼는 게 전부다. 가사마저 없는 클래식은 더 어렵다. 귀로 듣고 소리를 내어 표현하는 메카니즘은 언어와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동물의 울음소리를 듣고 뜻을 맞춰보라는 것과 같이 어렵다. 나에게 클래식은 그저 멀고 먼 다른 세상의 소리였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중앙북스, 2015)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악 칼럼과 에세이를 담아 배달한다. 어려워서 다가서지도 못했던 클래식이란 다른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으니 저자의 이름값은 충분히 했다. 게다가 ‘젊은 거장’, ‘천재’로 불리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에 음악 칼럼리스트라니. 건반이든 타자든 ‘손’으로 치는 것은 다 잘하는데 성씨 또한 ‘손’이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붙여진 이름. 이름값을 한다는 말은 삶을 자신의 이름만큼 정직하게 살아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가 궁금했다.


피아니스트인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부하게도, 소통"(p.316)이라며 가까스로 찾은 이유가 혹시 핑계의 키워드는 아닌지 곱씹는다. 자신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공감 가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며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여러 사람과 생각을 나눌 기회를 만들기 위해 조심스럽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또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뭔가란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주체 파악을 잘 하는 것”(p.8). 공존하기 어려운 능력과 겸손, 둘 다를 가졌다.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조건임에도 나는 책을 중간에 덮지 않았다. 아니 덮을 수 없었다.


이 책은 클래식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특히 모짜르트, 베토벤, 바흐와 같은 고전 음악가부터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왕샤오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가에 대한 설명이 무엇보다 쉽고 체계적이며 그럴듯하다. 그러나 ‘듯하다’의 함정은 클래식을 직접 듣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클래식을 책으로 배우는 것은 ‘육아’나 ‘연애’(특히 스킨십)를 책으로 배우는 것과 같다. 책에 소개된 클래식을 직접 듣는 것이 오히려 클래식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책을 중간에 덮을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천재 피아니스트보다 칼럼리스트로서의 손열음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음악 칼럼 역시 시사칼럼과 마찬가지로 역사 및 현재와 현실의 문제의식과 질문을 담고 있어야 한다. 손열음의 질문은 어린 나이에 성공한 젊은 음악가를 뛰어 넘는다. 개인적으로는 음악가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주변을 살피고 고마움을 안다. 더불어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한계를 짚어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는 것으로 물음표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낸다. 자신의 철학을 피아노와 글로 실현하는 보기 드문 예술가인 것이다.


“내가 음악을 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쌓기 위해 자기 스스로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그 과정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관객을, 어린이들을, 노인들과 아픈 이들을, 다음 세대를 향해야 한다든 것. (…) 그런데, 그게 정말 최후의 답일까? (…) 누군가 나에게 음악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은 감히 답하고 싶지 않다. 그 대답은 내 음악과 내 인생이 대신 해주었으면.”(pp.290~291)

칼럼리스트인 손열음에게도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음악 교육의 현실’과 ‘콩쿠르에 목숨 거는 사회’와 같이 현실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서? 그렇다. 천재는 혼자되는 줄 안다면, 그리고 그런 천재가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TV를 켜고 드라마나 보라고 비판할 줄 알아서? 물론 그렇다. 하지만 하나 더 있다. 누구보다 솔직하고 진솔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진심이 느껴진다. 칼럼리스트의 제1조건은 자신의 분야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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