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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Jan 10. 2019

다큐멘터리 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7)

 “우리 모두의 김지영”(p.179)은 김고연주(여성학자)가 쓴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7)의 서평 제목이다. 이처럼 마음에 와 닿는 제목이 또 있을까. 우리는 모두 김지영으로 자랐다. 소설을 요약했을 뿐인데 모두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니 이상한 일이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지영이 처음 만난 가정과 사회의 모습은 모두 남성 중심이다.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고 시어머니는 둘째까지 딸이라며 며느리를 위로한다. “괜찮다.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p.27) 딸을 낳았다고 위로받는 것도 이상한데, 딸아이만은 여자 혼자 만들었다는 듯 며느리만 위로받는다. 남편은 부인에게 등을 돌린다. 정작 위로받아야 할 이는 딸이라는 이유로 축복받지 못한 김지영이다. 이것이 김지영이 처음 만난 운명공동체의 첫인상이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마음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용인된다. 그것이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경우에도 여자아이는 받아들여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남자 짝꿍이 김지영을 괴롭히자 담임 선생님은 짝꿍이 김지영을 좋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 설명한다. 하물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좋아하면 더 잘 대해주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괴롭힘을 당한 친구에게 되려 이해와 용서를 강요하다니. 김지영이 사회로 나와 겪었던 차별의 첫 경험이다.


사회는 남성 위주의 체계를 만들어 놓고 이를 따르지 못하는 여성에게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도록 훈련시켰다. 남녀공학 중학교에 진학한 김지영은 남학생이 느끼는 성적 욕구를 막기 위해 교복 밖으로 비치는 속옷까지 관리받았다. 그런데 반드시 교복은 치마다. 누구를 위한 치마일까. 반면 남학생은 러닝셔츠도 입고, 흰 면 티도 입고, 종종 회색이나 검정 티를 입고 다니는 것도 허용된다. 남학생들의 사정은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여성들에게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순응하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의 문제를 통제했다. 여성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 


여성의 생리현상은 반드시 숨겨야 할 문제인가. 매달 피를 쏟는 것도 힘든데, 그 상황을 주변이 모르게 행동하는 것이 여성을 더 지치게 한다. 생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이므로 생리대를 까만 봉지에 넣어 다니도록 교육받아왔다. 생리혈은 아이를 낳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이를 숭고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모든 여성의 내면에 이러한 생각이 깊숙이 뿌리박혀 여성이 여성을 감독하는 수준에 이른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쉽게 치부된다. 김지영은 대학 동아리에서 복학생 오빠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김지영이 남자 친구와 헤어졌으니 잘해보란 말에 그녀를 관심 있게 봐온 선배가 “야,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라고 대답한다. 여성을 성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남성 중심의 사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흔한 장면이다.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p.93) 한다.


여성의 성 상품화는 김지영이 회사원이 된 이후에도 지속된다. 거래처와의 회식에서 상대 회사 부장은 젊은 사원인 김지영을 옆에 앉으라고 한 후 술을 따르게 강권한다. 이어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모를 말을 계속 늘어놓는다. 19금 유머를 남발하다 자신의 딸이 픽업 요청을 하자 즉각 응한다. 자신의 딸은 소중하고 다른 집 딸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저 ‘여성’인 것이다.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미래를 감안해 직장을 선택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육아가 반드시 여성의 몫임을 내포한다. 김지영의 언니는 아이를 낳고 키울 것을 생각해 교대에 가라는 부모님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좋은 직장 맞네, 그럼 누구한테나 좋은 직장이지 왜 여자한테 좋아? 애는 여자 혼자 낳아? 엄마,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야?”(p.71) 교사는 ‘교육 목적’이 아닌 ‘아이 키우기 쉬운 직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이유로 교사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탓할 문제만은 아니다. 육아는 사적인 가정문제니 가정 내에서 알아서 하라는 사회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


작가 ‘조남주’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10년간 일했던 경험을 소설에 충실히 반영했다. 상기의 사례 연구(Case Report) 뿐만 아니라 여러 데이터와 통계로 성실하게 근거를 제시한다. 2005년 100여 개 기업 조사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 2016년 여전히 열 명 중 네 명은 육아휴직 없이 일하고 있다. “물론 그 이전, 결혼과 임신 출산 과정에서 이미 직장을 그만두어 육아휴직 통계 표본에도 들어가지 못한 여성들도 많다.”(p.98) 2014년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인데 한국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혔다.”(p.124) 


소설 이후의 2019년은 어떤가. 82년생 김지현은 실존 인물이자 나의 옛 직장 후배다. 그녀는 지금껏 잘 버텼다. 친정엄마의 도움이 크다.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5시 반이면 PC가 자동으로 꺼진다. 일찍 퇴근하면 만사가 형통할 줄 알았다. 세상이 변했건만 여성에게 지우는 짐은 여전하다. 남편의 회식은 '나 오늘 회식'이란 문자 한 통으로 되지만 여성은 아이를 보육기관에서 픽업할 누군가를 섭외해야 한다. 보통 친정엄마나 아이의 친구 엄마다. 이들 또한 여성이다. 섭외에 실패하면? 이것이 여성의 유리천장 지수에서 최하위 순위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이 소설이 다큐멘터리 장르로 구분되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이젠 ‘우리 모두의 김지영’을 죽이고 애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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