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콩나물'(윤가은 감독)리뷰가 되지 못한 에세이 (스포 있음)
‘보리 엄마’(김소진 분)의 낯익은 목소리. “얘 유치원도 혼자 못가는 애야, 보리야! 정신없어 너 방에 들어가.” 동서 앞에서 “우리 보리는 안 돼!”라고 거두절미하기 미안하여 어른들 사이에 있고 싶은 아이를 에둘러 방으로 보낸다. 아버님 제사상에 생전 좋아하시던 ‘콩나물’을 올리지 못하는 미안함과 작은 아버지의 꾸지람이 교차한다.
보리 엄마는 윤가은 감독과 15년 전, 대학로에서 만났다. ‘아트’라는 연극 무대에서 무대감독과 조연출로 만났다. 이 영화를 만들고 4년이 지난 지금, 윤가은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를 비롯한 다수의 국제 영화제의 초청을 받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었고 보리 엄마는 연극치료사가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볼 생각은 없었다. 얼마 나오지 않는 ‘단역’ 일뿐인데 긴 시간 지루한 영화를 봐야 하는 것, 영화 볼 짬을 내야 하는 것이 부담이었다. ‘영화는 길다’, ‘독립영화는 지루하다’는 편견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우연히 글쓰기 숙제로 받아 이제야 챙겨본 것이 미안하다. 보리 엄마는 내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0년 넘은 ‘죽마고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미안함’이다.
‘보리’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나의 어릴 적 살던 골목이 나온다. ‘보리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다. ‘개’를 만난 곳, 앉은뱅이 의자에서 ‘게임’을 하던 곳, 할아버지 집, 눈에 익고 익숙하다. 보리가 고비를 만날 때마다 현실에선 보리와 아무 연결고리도 없는 ‘보리 엄마’의 실제 어릴 적 모습처럼 임무를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반면 보리를 찾고 있을 영화 속의 ‘보리 엄마’가 걱정됐다. ‘보리’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영화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것을 걱정한다. 나의 시선은 현실과 영화를 넘나들며 내 친구, ‘보리 엄마’에게 가있다.
‘콩나물’ 대신 할아버지의 ‘해바라기’를 제사상에 올린 보리. 보리는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선물했고 할아버지는 보리가 집으로 안전히 돌아올 수 있게 도왔다.(고 믿는다.) ‘콩나물’을 위해 시작한 모험에서 보리는 결국 무엇을 사야 하는지 잊고 만다. 끝까지 ‘아이스러움’에 안도했다.
영화는 한 아이의 시선과 경험을 따라갈 뿐 간섭하고 끼어드는 어른의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원래 가지고 있는 나의 ‘편견’들이 발견될 뿐이다. ‘아이는 할 수 없다’, ‘제사는 형식이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나’, ‘아이에게 말 거는 택배기사는 위험하다’, ‘콩나물을 기어코 사는 것이 결론이다’, 심지어 ‘독립영화는 지루하다’ 까지. 수많은 편견을 가졌던 관객으로서, 아이의 시선을 따라잡지 못하는 어른으로서, 어느 한 배우의 친구로서 진심으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