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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Sep 30. 2018

사랑하면 큰일 난다.

연애가 뒤집어쓴 방해꾼이라는 오명에 대하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중 -


사랑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성적 하락의 주원인으로 꼽혀, 연애 못하게 딴짓 못하게 단속받는 것이 당연했던 중고등학생 때부터였을까.

사랑과 성공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어른들 말 들으면 다 잘된다'는 소리에, 다 잘 되고 싶어 말을 듣다 못해 진짜 믿어 버린 모범생의 말로였다.

 

'해야 할 것'보다 '마냥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이 우선하는 건 곧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뒤틀린 사고가 나의 시간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사용했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던 노희경 작가님 말대로라면, 난 중범죄자 무리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아- 의심 없이 내재화되어 온 당연한 진리들은 진실과 얼마나 거리가 먼 가.




몇 달 전의 일이다.

'쓰고 싶다'는 욕구에 지배받고 있으면서도, 단 한 줄도 쓰지 않는 날들이 며칠씩 지나갔다. 뭐부터 써야 할 지도, 왜 써야 하는 지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 지도 갑자기 모두 막막해져 오는 바람에 할 일을 무기한 미루는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남자 친구에게 말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왜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쓰려고 하는 게 세상의 나무를 베서 담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치가 있어야 되나. 쓰고 싶으면 쓰는 거지."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쓴다는 건 뭔가 모순적인 활동이잖아. 쓰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읽혀야 완성되는."

"그럼 내가 읽을게."

"그럴래?"

"응.”

하는 심심한 대화가 이어진 후, 그 날 저녁 나는 양껏 썼다.

신기하게도 글자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고, 쓰고자 했던 것들이 다시 보였다.


그는 말을 주는 법이 없다.

'힘내. 믿어. 너는 할 수 있어.'하는 말에 '고마워'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이전과 똑같이 한 글자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 아닌 진짜를 준다.

그가 툭 던지는 담담하고도 간결한 대답을 받고 나면 대개 웃음이 나서 킥킥 웃는데, 정신을 차려 보면 내가 봉착한 '문제'(진짜 문제는 아닐지언정, 당시에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미 소멸하고 없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가 마법사여서가 아니라, 나에게 힘 있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가 그런 힘을 가지는 것은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눈깨비 소년’ 엽서와 제주의 풍경)



사랑과 성공은 반대방향의 갈림길에 놓여 있지 않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 하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관계도 아니다.

둘의 관계는 어떻게 성공을 정의하느냐와 어떤 사랑을 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다.


나의 경우, '성공'은 하고 싶은 걸 잘하게 되는 것이며, ‘사랑'은 하고 싶은 걸 계속하게 하는 힘이다. 사랑 없는 성공은 어딘가 불안한 것이 내 연주다. 오랜 시간 방해꾼이라 여겨져 온 사랑은 심각한 명예 훼손을 겪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쓴 글을 읽겠다던 그는 정말로 읽고 있다. 그것도 가장 먼저.

아마 이 글을 올리고 나면,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두둥실 님이 라이킷 하셨습니다.' 알람이 울릴 거다. "좋은 글이다.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그 덕분에 오늘도 살짝 행복하고, 계속 쓸 수 있겠지. 큰 일이다.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이처럼 '기존 관념'이 기이하게 달라진 사례들을 모아 보물처럼 간직해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관념을 고수하는 세상으로부터 두 사람을 분리시키는 데 일조했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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