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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Oct 14. 2018

먹어 주니, 기쁘다.

돌보기 쪼렙의 길고양이 밥 주기.

무언가를 키우는 것에 서투르다.

어릴 적에 금붕어나 햄스터는 키워보았지만, 그다지 애정을 느끼진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햄스터가 남기고 간 흔적이 하나 있다면, 쾌쾌 묵은 듯 절어 있는 수건 냄새를 '햄스터 냄새'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긴 것뿐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생일 선물로 선인장 화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잘 키워보겠다고 기숙사 방 창가에 두었는데 한 두 달도 안 가서 시들시들하더니 죽어버렸다. (신경 하나 안 쓰고 내버려두기만 해도 잘 큰다는 바로 그 선인장..!) 당시 한 룸메이트의 어머니가 화훼 분야 교수님이셨기에 선인장 살리는 법은 없는지 여쭤봤더니, 선인장을 죽이는 건 식물을 키울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란 대답을 받아 한참 웃고 그걸로 끝.


성인이 되고부터는 고양이가 키우고 싶어 주기적으로 고양이 가정 분양 사이트를 뒤적거리곤 했지만,

훌쩍 떠나는 걸 좋아하는 성향과 거처가 이리저리 바뀌는 상황이 마음에 걸려 실제로 데려올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반면, 엄마는 무언가를 키우는 데 대가다.

한 두해 전쯤 고향집에 갔더니, 거의 나무가 되어 커다란 화분에 자라고 있는 어떤 식물(이름도 까먹은 이 무심함..)을 가리키며, 엄마가 대뜸 기억나느냐고 물으셨다.

"응? 저게 뭔데?"했더니 엄마가 대답하시기를,

"너 유치원 다닐 때 식물원 견학 갔다가 모종 받아왔던 거. 저렇게 키운 거야." 하셨다.


서울에 살 때, 하루는 엄마가 자취방에 오셔서 화분 두 개를 사다 놓으신 적이 있었다.

화분을 보자마자 자동반사적으로 자신 없는 마음이 들어 엄마에게 어떻게 키우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가 사다 놓고 가셨던 화분 두 개.

"언제 물 줘야 하는지 자꾸 깜빡하게 된단 말이야." 하는 내 말에, "다 방법이 있다"고 웃으며 엄마가 전수한 노하우는 이런 거였다.


"물을 줄 때가 되면, 내 목이 바짝바짝 말라.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안 가신다 싶잖아.

혹시나 싶어 만져보면 딱 물 줄 때가 된 거 있지."


내가 상대가 되어버림으로써, 돌보는 것.

엄마는 감응으로 돌보는 경지였다.

경지라고 표현할 수밖에.






엄마의 노하우를 잘 터득했냐 하면, 아직이다.

하지만 그때 엄마의 말이 나한테도 숨어 있던 '돌보는 마음' 같은 걸 자극했던 건 아닐까 싶다.

제주에 오고 나서 유독 길 위의 생명들이 눈에 띄었다. 목줄 없이 차도를 위험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개들을 마주치면 어떻게 할 줄 모르면서 눈시울부터 붉어지곤 했다.


그러던 중 며칠 전부터 집 마당 한구석을 길고양이 두 마리가 아지트로 삼기 시작했다.

으아... 안락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던 모습이 무진장 귀여웠다.

저녁을 요리하며 고양이들 밥도 함께 챙겨보았더니, 다음 날 깨끗이 먹어놓았더랬다.

빈 그릇을 손에 쥐고 집으로 들어가는 마음이 이상하게 기뻤다. 그 후론 매일 밥 먹기 전마다 마당을 들락거리며 고양이들 밥을 함께 챙기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사료도 사 와선 말이다.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걸 꺼린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밥을 매일 챙겨 놓는 후로는 오히려 얼굴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면 먹은 흔적과 비워진 그릇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먹었다!'는 흔적 하나가 어쩜 이리 기쁜지.

어디서 무서운 일 당하지 않고, 잘 살아 있다는 신호 같아서 충분하게 느껴진다.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 아마 고양이들도 보았을.


이것이 돌봄 경지의 제1단계. 돌봄에 기쁨을 느끼는 거라면, 나도 언젠간 엄마처럼 감응으로 돌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애초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 말을 써서 생각하고 말을 써서 뜻을 전하게 되면서,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라는 유별난 생물이 된 이래로, 전달될 게 전달되지 않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 마쓰이에 마사시,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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