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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Oct 05. 2018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을 바꿔보자.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전공알림단으로 활동했다.

이름 그대로 전공을 알리는 학교 소속 동아리로서, 중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 탐색과 진로 고민을 돕는 강연을 주로 했다.


전체 전공별 학생들이 몇 명씩 모여있었기에 기수당 인원이 백 명 가까이에 달하는 꽤 큰 동아리였는데, 친목 분위기가 나와는 영 결이 맞지 않고 불편했던 탓에 뒤풀이 같은 자리에 나간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세 자리 숫자의 사람들 중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며 친근하게 지내는 이도 딱 한 명뿐이다.


그럼에도, 동아리의 본질적 활동 자체는 무척이나 애정 했다. 별 거 아닌 얘기에 까르르 웃으며 손뼉 치는 귀여운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강연하는 것 자체도 참 좋았기에 조용한 일원(다른 말로는 아싸..)으로 2년 동안이나 활동을 지속했다.


공강 날과 방학을 이용해 틈틈이 방문한 학교가 30군데는 더 넘었으니, 대략 잡아도 약 천 명에 가까운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또 했던 셈이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아이들 앞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려면, 자기가 그대로 살고 있어야 말이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열심히 사세요'라고 아무리 말할지라도 화자가 열심히 살고 있지 않으면, 그 말을 듣고 열심히 살아보겠다 생각을 고쳐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듣는 사람은 귀신같이 안다. 어떤 말이 진짜고, 아닌지.


닉 부이치치의 'Why not?'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하는 이유.

스티븐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에 자신이 가진 열정이 끌어올려지는 이유다.

말빨은 곧 삶빨이다.



그래서 삶이 고민될 때, 말을 고민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들 앞에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서보곤 한다.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라는 궁금증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들을 떠올린다. 이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를 곱씹어 본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무한한 시간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죽음을 코 앞에 두었다가 돌아온 거라면,

나는 무얼 하겠는가? 같은 가정법의 일종인 셈이다.


힘들 때는 참고 버텨서 이겨내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은가,

아니면 좀 쉬어도 좋으니 나를 보살피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은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니 현실을 직시하고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며 살아도 안 죽는 게 인생이니 하고 싶은 건 해보라고 말하고 싶은가.


어떤 인생을 살아냄으로써, 어떤 이야기를 할 텐가.

원체 말 글을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질문을 바꾸고 나면 고민의 방향이 뚜렷해진다.

거대한 질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먹먹함이 정리된 기분이 든다.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리 정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일단 사는 거지.

그럼에도 정리된 기분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정리한 방향에 더 할애할 수 있어지니까.

정해진 항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항해하는 건 어렵지만,

가고 싶은 항로를 보면서 하루하루 초점을 맞추고 또 맞추는 건 가능하니까 말이다.


만약 아이들을 마주할 기회가 또 온다면, 

하고 싶은 걸 하는 의지있고 싶은 곳에 있을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다.

억새가 춤추는 가을 제주. 새별오름.

그래야 가을이 오는 모양을 찾아다니며 웃을 수 있다.

행복의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행복을 자급자족하는 상태가 되는 것. 인생에 목표가 있어야 한다면 그게 바로 두 번째 목표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물론 생존이다. 일단 살아 있는 것. 건강하게.

세 번째가 있다면, 자급자족하다 못해 넘치기 시작하는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나누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 후의 일이야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정도의 것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마음 다해 나누고 싶다. 몇 년 뒤쯤이면 가능하려나.


어쨌든 내가 사는 건 오늘이다.

오늘 하루 가장 보고 싶은 사람과 함께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읽고 쓰고 , 일도 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시시때때로 웃었으니.

오늘의 초점은 용케 맞췄다 싶어 살짝 웃음이 난다 :-) 비록 제주에는 태풍이 오고 있지만.

애정하는 것들이 담긴 한 컷.


「 나는 피식 웃었다.
"어떻게 공부를 행복하게 해? 자는 거나 먹는 거라면 몰라도."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공부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야. 네가 그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견딘다면, 그 희망 때문에 견디는 게 행복해야 행복한 거야. 오늘도 너의 인생이거든.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 」

-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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