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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Oct 07. 2018

불안은 태풍을 닮았다.

제주의 태풍을 통해 본 불안이라는 불청객.

#1. 제주까지 찾아오는 불청객.

여전히 불안하다.


서울에서는 원하지 않는 것들을 의무감으로 이행하면서 몸과 마음을 평생 견디며 살까 봐 불안했는데, 

제주에서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로 무언갈 해내지도 이루지도 못하고 평생 별 볼 일 없게 살까 봐 불안하다.


한 시간 앞도 못 내다보는 우매한 인간인 주제에,

평생 같은 시간을 어찌해보겠다고 끌어다 와서는 한 자리에서 고민하고 있는 건지.

어이가 없다. 근데 불안이란 아이도 참 집요하기 그지없어서, 한 번 찾아오면 움직이지를 못하게 한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을 해야 뭐라도 바뀔 진대,

생각만 하게 하고 행동을 못하게 막아버리는 게 불안이 하는 짓이다.


불안은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고 자라난다. 

그러곤 '너 서울에서 내려와 한다는 게 고작 이런 거냐' 같은 소리가 귓가에서 왱왱 울린다.

고작. 고작. 하고 불안이 귓가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귀가 아프고 또 무섭다.


하는 짓을 써보고 있으니, 딱 누구 생각이 난다.


태풍.




#2. 제주에서 태풍을 만나는 것.

3일 전, 제주도에서 맞은 두 번째 태풍 콩레이가 지나갔다.


8월 말쯤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태풍을 맞아보기 전, 무사하세요- 하는 소리들이 오고 가는 걸 보며 너무 요란스러운 거 아닌가? 했었다. 육지에만 살았던 자의 안일한 생각은 솔릭이 찾아온 새벽에 무참히 깨졌더랬다.

이건 뭐.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태풍과 차원이 달랐다.

바깥과의 통로를 완전 봉쇄하고 집 안에 있는데 들리는 소리가 굉음이다.

새벽에 시작된 굉음에 잠을 깨선 온 정신이 허둥거렸다.

솔릭의 소리가 궁금하다면, 재생해보세요. 


게다가 솔릭은 시속 4km로 제주를 지나갔던지라, 저 소리에 들썩이는 집 속에서 꼬박 하루를 옴짝달싹 못했다.

집이 때려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으니, 순식간에 '어떡하지?'의 세계가 열렸다.

~하면 어떡하지? 상상 대전이 머리 속에 펼쳐졌다.


전신주가 무너지고 인터넷이며 전기며 다 끊어지면 어떡하지?

물대포 같은 비바람에 문이 다 깨지면서 휩쓸려서 조난당하면 어떡하지?

집이 뽑혀서 날리다가 바다 한가운데 메다 꽂히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걸. 어떻게 하려고 하면 큰 일 난다.

불안하고 걱정돼서 뭐라도 해보려고 문을 열고 집 밖에 나갔다간, 진짜 큰 일인 거다.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태풍이 오기 전 창문에 테이프도 붙여놓고, 문단속도 꼭꼭 잘하고, 넘어질 것 같은 것들 잘 챙겨놓는

대비는 충분히 해야 마땅하지만. 진짜 태풍이 몰아치는 쇼타임에는 절대적으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 

무섭고, 잠을 잘 수도 없으니,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뜬 눈으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냥 책을 읽었다. 솔릭 때도, 콩레이 때도. 

줄어든 수면 시간만큼 늘어난 시간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태풍 소리가 bgm 같은 느낌이 들만큼 흡입력 강한 매력적인 소설 한 권,

가슴 저릿저릿 구절마다 눈물 나는 소설 한 권. 두 권이 내 시간에 같이 있어줄 뿐이었다.

 



#3. 잘 보내주기. 혹은 잘 놀아주기.

쓰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둘은 비슷하게 군다.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

말도 안 되게 큰 소리로 무섭게 만드는 것.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

온갖 상상 아니 망상의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

잠 못 자게 하는 것.

쉽게 지나가지도 않는 것.

나의 경우, 책이 라이프가드 역할을 해준다는 것.


아직은 어렴풋이지만, 불안은 태풍의 이런 면과도 아마 닮지 않았을까 한다.

마침내, 결국은, 끝끝내는 지나간다는 것.

가고 나면 언제 그랬나- 싶어 진다는 것. (날씨가 아주 맑다.)

한 번 보내보고 두 번 세 번 보내다 보면, 여전히 무서워도 점점 요령은 늘 것이라는 것. 

태풍이 지나가고 난 날.


일 년에 몇 번 오는 태풍이 무섭다고 제주에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떠나게 되더라도, 이유 목록에 태풍은 없을 거다. (물론 피해가 심하신 분들을 보면 가슴 아프지만..)

가끔씩 혹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내가 선택한 이 삶과 지금이 좋은 건 사실이다. 

소위 안정된 삶의 조건이라는 것들을 하나씩 맞춰간다고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게 앞선 경험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덜덜 떨릴 것처럼 무서워도.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대신, 불안을 잘 견디고 잘 보내주는 방법을 배워보련다.

어차피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놈이라면, 잘 놀아줄 수 있으면 살짝 더 좋겠지.

좋은 책, 좋은 사람이 라이프가드가 되어줄 테니.


「 '너무 무서워 시도조차 못 하도록 해서 나를 실패하게 만드는 마음속의 악동 같은 괴물들.
그 목소리들은 어디서 온 거지?'

그 목소리들의 일부는 사회적 편견들의 반복이고, 일부는 개인적 역사의 메아리이며, 일부는 유전적 유산의 발현이다. 이 모두가 합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샐리는 말한다.

우리가 내면의 독백을 고쳐쓸 수 있고, 심지어 그 독백들을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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