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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Oct 16. 2018

남들의 인정, 그게 정말 중요할까?

타인의 말 속에 숨은 얼굴 찾기.

자신의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시시때때로 전화를 거는 친구 한 명이 있다. 하도 걸어서, 자신의 소재로 얼마든지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힘들다고 전화를 거는 친구의 고민은 결국 단 하나로 압축된다.

자기 삶을 자기 정신에 못 살겠다는 것.


사랑하는 부모님의 기대도 만족시켜야 하고, 남들 보기에 멋져보이고도 싶고. 그러니 제대로 쉬는 것도 연애도 못하겠고, 계속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어느 순간 마음 한 구석이 허무해지면서 ‘대체 왜 이러고 사나-’ 싶은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는 방식을 바꿀 순 없다는 식의 무한 루프.


친구는 말한다. “나는 남들한테 '멋지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애.”하고.

“그게 진짜 행복하면 힘들다고 찡찡대지나 말던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실제로 많이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늘 같은 루프 속에 살았고,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으니.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 인정. 칭찬. 말.

그것은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내게는 타인의 말이 유독 많이 쏟아졌던 시기 또는 순간이 몇 있다. 이런 걸 특이점이라고 부른다던가.


대학을 다니다 1년 휴학을 하고 지리산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몇 달 간 살던 때가 그랬다. 명상을 집중적으로 배우던 중 앞으로 명상가의 길을 걷겠다 결심하고는 대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설치고 다녔다.

당시 명상센터의 선생님들은 "너에겐 이 길에 분명한 재능이 있다. 언젠간 꼭 이 일을 하게 될거다."라고 진지하게 나의 길을 제시했다. 반면, 엄마는 "넌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성향의 사람이야. 정신적인 일은 너에게 맞지 않아" 라며, 일단 대학 졸업부터 하고 다시 생각해보라 하셨다.


작년 봄 즈음에는 버스킷리스트 실행모임에 참여하여,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토크버스킹해보기(tv프로그램 '말하는대로'처럼)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주말 여의나루 한강 공원에서 모임 멤버들과 함께 버킷리스트에 줄을 긋는 과정을 보며, 한 친구는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하냐."라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친구는 "너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열심이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버킷리스트 실행 모임. ‘과감한 인생’ :-)

제주 살이를 시작하고 나서

어떤 이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네가 참 좋아 보여."라고 응원하는가 하면, 어떤 분은 다급히 전화를 걸어와 "놀생각만 하지 말고 경력을 더 쌓는 게 좋아."라며 설득과 조언 사이의 말을 건넨다. 또 다른 친구는 "너는 언젠간 결국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올 거야. 넌 그렇게 있는 게 별로 안 맞을 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 많은 제주살이 현황. 잘 지냅니다. 이상 무.

똑같은 일에 대해서 잘 하고 있다는 말, 그건 아니라는 말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잘 하고 있는 건가, 잘못 하고 있는 건가?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내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말 속에 있는가?

되물어보던 중 새삼스럽게 놀라운 한 가지를 발견했다.




내게 영성적 재능이 있다고 말한 분은 본인이 정신적 가치를 높게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물질적 재능이 있다고 말한 엄마는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


내게 말을 잘한다고 한 친구는 말을 정말 잘하는 스타일의 친구였고, 사랑받고 싶어서 열심이라고 한 친구는 사랑받기 위해 늘 치열한 상태였다.


내게 구름같이 자유롭다고 말한 이는 정작 본인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같은 사람이었고,

경력을 더 쌓아야 한다고 하신 분은 아주 오랜 기간 열심히 탄탄한 경력을 쌓고 살고 있으며, 별로 안 맞는 선택일거라고 한 친구는 자신이 이런 선택을 잠시 했는데 결국 맞지 않다고 느낀 사람이었다.


어제 내가 남자친구에게 한 말인 "가끔 오빤 나를 되게 나쁜 사람 만드는 것 같아."도 완전한 자기 소개에 불과했다. 상대를 가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건 바로 내가 상대에게 저지르곤 하는 못된 짓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사람들은 상대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모두 자기 자신을 말할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장점 혹은 단점이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의 삶에 대한 합리화이기도 하다. 철저히 각자의 관점에 입각해 이루어진 각자의 해석이다.


'나'를 향해 있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

타인의 말이 품은 실체다.


남들에게 인정 받고, 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듣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 가변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은가?

행복의 이유가 되기에도,  

삶의 방향 설정을 위한 지표로 삼기에도.


그것이 설령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의 말일지라도 말이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 갖가지 말이 가슴속에서 교차했습니다만, 저는 다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진땀 나네, 진땀.”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이 개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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