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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Oct 21. 2018

‘살아보기’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제주살이 세팅 과정 공유

제주 혹은 해외 도시 한달살이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다. 공통 키워드는 '퇴사'와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탐색' 정도.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

치앙마이 한달살이, 런던 세 달 살기, 디지털노마드가 우리 세대의 로망이 되고 있는 건, “여행 가서 쉬고 놀다 오고 싶다”의 욕구가 이제는 “좀 다르게 살아 보고 싶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느껴진다. 기존에 지속해 온 일상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각자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장소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시간이 필요해진 게 아닐까 한다. 물론 내가 실험 중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별 거 없지만.. 제주살이 정보와 개인적 환경 세팅 이야기를 살짝 꺼내 공유해보고자 한다. 사실 환경 세팅은 살아보고 싶은 도시와 기간, 동반자 여부, 본인의 통장 사정, 직종 및 경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기에 '이런 옵션도 가능하구나' 하는 참고용 정도로만 보면 적당할 것이다.



1. 원하는 정주 환경 세팅

살아보기는 3박 4일, 4박 5일 정도의 휴가 여행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첫 째 날은 핫한 호텔, 다음 날은 풀빌라 펜션 식의 숙소 찾기와는 다르게, 살 곳을 찾아야 한다.

제주살이는 이 부분에서 해외 도시 살이보다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국내이기에 언어 소통, 비자 처리에 문제가 없으며, 제주에 있는 수많은 게스트 하우스, 렌탈 하우스에서 한 달 이상의 장기 체류가 가능하다. 한달살이만 가능한 렌탈하우스들이 있을 정도다. 취향에 맞는 적정 가격 선의 숙소를 찾기도 쉽고, 문의하고 예약하는 것 모두 어렵지 않다.


제주 시내는 공항도 가깝고, 병원이나 대형마트 등 편리한 시설과는 모두 인접해 있어 편리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서울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서울의 바쁜 속도와 비정상적인 인구 밀도에 지친 나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장소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시내에서 양쪽 끝단으로 멀어지면 곳곳에 자리하는 한적한 시골마을들이 그랬다. 관광지화 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을들.


그래서 내가 현재 지내고 있는 곳은 제주 서쪽 판포리라는 시골 마을이다. 이 곳의 매력은 에메랄드빛 판포 바다와 전매특허 서쪽 노을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중독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물론 교통과 편의시설 접근성 모두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대가를 치른다. 이 불편함에 조금씩 적응하는 방식은 한 번 나갈 때마다 몇 가지의 겸사겸사 볼일을 보는 거다. 장 보러 간 김에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약국에서 약을 사서 들어오는 식.


한 가지 더. 제주 시골마을은 해 진 이후에 무척이나 조용해진다. 문이 열린 가까운 술집이 없음은 물론이고, 놀 수 있는 곳 자체가 없다. 밤늦게까지 음주가무나 시끌벅적 노는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곳이 우울해질 수 있다. 원래 그런 것에 별 흥미가 없던 나에게는 오히려 천국과 같지만 말이다. 조용해서 책 읽고 글쓰기 좋음은 물론이고, 친구가 놀러 왔을 땐 캔맥을 사들고 바다를 마주하고 마시면 그만한 낭만이 또 없다.

사진의 좌표는 노을 지는 제주 서쪽 판포리.



2. 필요한 경제적 여건 세팅

프리랜서가 아니었던 일반 직장인이 퇴사를 결심하며 시작하는 '살아보기'라면, 가장 먼저 걱정되고 또 궁금한 부분이 '돈은 어떡하지?'일 것이다. 나 또한 가장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물론 한달살이처럼 한정된 기간이라면, 현재 통장 잔고 대비 문제없을 적정 옵션들을 고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처럼 몇 달이 될지 모를 N달살이의 경우, 돈이라는 이슈가 해결되지 않으면 얼마지 않아 좋지 않은 마음으로 종료를 감행하게 될 것은 뻔한 결말이지 않은가.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제주로 짐을 싸서 내려올 당시 구체적인 대비책을 완벽하게 미리 갖추고 있었느냐 하면, 전혀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일단 가자 였다. 가서 좀 쉬다가(한 달 정도는 푹-), 한 달쯤 지나면 여기저기 좀 아는 데도 생길 테고 하니 아르바이트를 해볼 생각이었다. 주말마다 재즈 공연이 있는 재즈바도 좋았고, 오설록이나 제주 맥주 같은 곳에서도 일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서울과 다르게 제주는 인력난이 크니, '어떻게든 되겠지.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라는 모양의 생각을 비행기에 실어 왔다.


일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풀렸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분의 제안으로 제주에서 원격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리랜서 혹은 디지털노마드 라는 말을 쓸 만큼 창창한 경력을 토대로 한 독립 고급 인력은 아니지만.. 어쨌든 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 매달 같은 날짜에 일정한 금액이 들어오는 대신, 여력이 있는 만큼 일을 받아와서 하고 그만큼의 돈을 받는다.


이 생활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장점은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엄청난 해방감과 자유로움. 단점은 불안정한 수입 수준과 더 불안정한 경력. 일이 언제 있고 언제 없을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주말에 일해야 할지 주중 밤에 급하게 일해야 할지도 예측이 어렵다. 매우 유동적이다. 또 이렇게 일하는 것을 경력의 연장이라고 인정받기에는, 번듯한 조직 내 꼬박 채운 근무일수를 경력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직까지 한국의 현실이다.



3. 감내하는 멘탈 세팅

하지만. 2시에 자고 11시에 일어나도 괜찮다. 아직 멍한 아침에는 억지로 키보드를 붙들고 있는 대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다가 저녁에 일을 처리해도 되고, 일을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리면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들어와도 된다. 고정 지출 생활비를 내 힘으로 모두 감당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좋아하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은 매일 마시고, 사서 읽고 싶은 책은 고민 없이 살 수 있고, 사고 싶은 옷은 몇 번 고민해보고 그래도 사고 싶으면 사는 정도의 소비 볼륨을 유지하고 있다. 경력을 지속시키는 것보다도 지금 나에게 더 절실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이 시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괜찮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조건 같은 건 없다.

‘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모든 대비책을 갖춰 놓고 하겠다는 것은 안 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통도 좋고, 주변에 즐길 거리도 많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인테리어도 멋지고, 지갑 사정에도 맞는 저렴한 숙소는 없다. 원래 하던 일의 경력을 탄탄히 이어가면서, 돈도 일정하게 많이 받고, 내 시간도 많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병행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중요한 건 선택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추리고, 그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 선택에 함께 딸려오는 불편함과 불안정함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라도 충분한 필요를 느끼는 일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도 괜찮을 거다.


「 나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시끌벅적한 화려한 대도시에서의 삶을 즐기는 사람인가? 열대기후의 뜨거운 햇살과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똑같은 공간이 누구에게는 너무 덥고 습한 날씨로 다가와 하루도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날씨, 문화, 예술, 음식, 자연, 종교 등 어떤 것이 나의 일상에, 그리고 나의 행복에 더 중요한 요소인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

- 도유진, <디지털 노마드 -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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