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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Oct 29. 2018

바탕화면에 새폴더를 만들었다.

이름 바꾸기(M) : 피아노 악보

제주에 온 이후 요리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피아노를 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치게 됐다.


피아노를 처음 배운 건 7살 경이었다.

"발레 배울래? 피아노 배울래?" 엄마가 물었을 때, "피아노. 발레는 절대 싫어."하고 단호하게 대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에 발을 디뎠다. (그때 발레를 배웠다면 몸매도 자세도 아름다웠을 텐데- 싶어 살짝 아쉽기도..) 어쨌든 별 이유 없이 다니게 된 것 치고는 쉬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동그랗게 손가락 기본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자로 맞으며 혼나기도 하고, 몇십 번씩 연습해서 딩딩 거리는 소음을 겨우 연주에 가깝게 만들고, 가끔 콩쿠르 대회 따위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한 곡을 몇 천 번씩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피아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하루에 스며 있었다. 세어 보니 7년이란 시간 동안 그랬다.


그리고 별 이유 없이 멀어졌다.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중학생부터는 공부를 좀 해야겠지-'라는 미적지근한 이유로 학원을 그만두었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피아노를 놓을 자리가 있는 집 또는 방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가끔 어쩌다 피아노를 다시 만나도(신촌 길거리에 놓여 있던 피아노처럼)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 때 절친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멀어져 대화조차 어색해져 버린 탓에, 생판 남보다도 만나기가 꺼려지는 옛 친구 같았다.




그런 옛 친구와 묵혀둔 쾌쾌한 감정을 풀어내고 다시 가까워진 기분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오랜만이다.

시작은 피아노 치는 사람을 보며 새삼 멋있다고 느낀 것이었다. 제주 금능리에 위치한 take 5라는 재즈바에서 라이브 재즈 공연을 처음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더랬다.

조윤성 쿠반파이어 퀸텟(좌), 박기훈 퀠텟(우)


압도적인 에너지가 공간을 장악한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엠마 스톤이 라이언 고슬링에게 'People love what other people are passionate about.(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 있어.)'라고 했던가. 정말 그랬다.


화룡점정은 재즈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남자친구의 영향이지만 말이다 :-)

남자친구 덕분에 코드 연주법이나 재즈 피아노 솔로 연주법을 조금씩 맛보기도 했는데, 악보 그대로 카피하는 연주에만 익숙한 내 손가락은 백지의 악보 앞에서 오갈 데를 모르고 방황한다. 재즈는 엇박자를 살려낸 특유의 리듬감이 생명이라는데, 정박자를 벗어날 줄을 모르는 손 움직임이 엄청 열등하게 느껴진다. 근데 그게 재밌어서 깔깔 웃었다.




건반에서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손 끝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는 듯한 촉감이 다시 재밌어진 거다.

'아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안돼' 하며 하고 또 하다 보면 어느새 손이 알아서 움직여주는 느낌. 내 실력에 비해서 너무 쉬운 곡은 한 번 치고 나면 재미가 사라져 이내 어려운 곡으로 넘어가는데, 그러면 바로 심한 좌절감이 찾아와 다시 쉬운 곡을 황급히 찾아 치는 식의 심리전. 오래 잊고 있었던 기쁨이 살아난 듯하다.


'뉴필로소퍼'라는 철학 잡지에 실려 있던 '게으름을 선택할 자유'라는 칼럼이 문득 생각난다.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바탕으로, [지나친 노동 - 소비를 통한 해소 - 끝없는 욕구 - 다시 지나친 노동]의 악순환을 끊으면 쓸데없는 물건에 대한 소비욕구가 창의적인 활동의 욕구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나의 물건 구매액수 그래프가 확연한 하향세를 띄고 있는 이유도 창작 활동이 증가했기 때문이려나.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내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피아노 악보라는 새폴더가 생겼고, All of me(a.k.a. 팔꿈치 곡)을 원박자대로 막힘 없이 연주하고 덤으로 재즈 곡 하나를 느낌 있게 연주할 수 있다면 멋지겠다.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우리가 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 내 삶에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 인생의 수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겁니다.
...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낼 땐,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게 마치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였던 거죠. 아이 용품을 둘러보고, 쇼핑하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오락이었던 거예요."」

- 도유진, <디지털노마드-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의 '리 로센&리사 로센 인터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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