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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Sep 27. 2018

물음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때.

애정과 염려로 둔갑한 타인의 호기심에 대한 대처.

"아니에요. 봉급 생활자가 되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화가가 될 겁니다."
큰 맘먹고 그 말을 했습니다.
"헤에?"

저는 그때 목을 움츠리고 웃던 넙치의 얼굴에 떠오른, 정말이지 간사스러운 그림자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경멸 같기도 하면서 경멸하고는 또 다른, 이 세상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바닷속 천 길 만 길 깊은 곳에나 그런 기묘한 그림자가 떠돌고 있을까. 뭔가 어른들 생활의 제일 밑바닥을 얼핏 보는 것 같은 웃음이었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중 -
#1. 질문이 풍년 

추석이 지나갔다.

어렸을 때 추석은 맛있는 거 많이 먹는 날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물음표에 시들시들해지는 날이 됐다.

어깨 당당히 펴고 목에 힘주고 대답할 수 있었던 때도 있었으나, 그때는 그렇게 대답하는 상태를 만드느라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승리감을 반짝 느끼곤 살기 위해 잠만 퍼질러 잤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석은 패배감에 물들 것만 같은 명절이긴 했지만 결국 고향에 다녀왔다.

퇴사와 제주살이를 한 번에 감행하는, 소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되면서 명절이 따로 없어졌는데 명절이라고 뭐 더 다르겠나 싶었다.  어차피 질문 세례는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진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회사는 왜 그만뒀어?'

'언제까지 제주도에 있을 거야?'

'돈은 벌고 있어?'

'그래서 요즘 뭐하고 지내는데?'


질문 없이 하루를 넘기기가 쉽지 않고, 한참 연락을 안 하고 살던 이들과 연락이 무지하게 닿는다.

이번 추석에 질문별 지불 가격을 매긴 농담이 있던데, 추석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경제 활동 없이도 난 고소득자가 될 테지. 


사실 이렇게 날아오는 질문들은 뻔하디 뻔해서, 예상 질문 리스트를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예상했음에도 뻔하게 움츠러들고 마는 건, 질문이 애정과 염려로 둔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불편한 티를 내도, 

'나는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하는 말이지.'

'네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걱정되는 마음에 하는 말이지.'

오히려 본인들이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어색해지기 일쑤다.

수를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다.



#2. 나름의 대처법

지난 몇 달간 질문 폭포에 휩쓸려, 다시 제자리걸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 습득하게 된 방법은 한 가지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


일단은 내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의 경우, 질문들이 모두 애정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대개는 질문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 충족 또는 담화 소재거리 채집 목적으로 뭉친 물음표 덩어리였다.

내가 받은 것은 '호기심'이었다. 궁금해하는 마음을 받았다.

그래서 나 역시 상대방을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회사는 잘 다니고 있냐" 물으시면, 그냥 웃으면서 같이 궁금해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회사에 근무하셨어요? 정년까지 다 채우시고.."

이후에는 조금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질문 대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그냥 딴생각할 수가 없었지. 너네 아빠랑 삼촌들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키고. 그거밖에 몰랐지... 그냥 그런 거였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서로를 조금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일까지 생기기도 한다.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돌려주면 그만인 것이었다. 



#3. 잘남 전쟁에의 종전 선언

하지만 이마저 소용없을 때. 

아무래도 기분 나쁘고, 내가 못난 것 같고, 비교당할 때.

나는 그냥 조금 움츠러들기로 했다. 쭈굴쭈굴 해지기로 했다.


작아지기 싫다는 불안 탓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다음 단계'와 빽빽한 '일정표'를 욱여넣었나.

몇 분 우쭐할 수 있는 대가가 온통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루의 연속이라면. 

아무래도, 백번을 다시 생각해도,

일단은 맘 편하게 숨 쉬면서 살고 때때로 내가 못난 것 같은 열등감을 느끼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좀 못난 것 같아도 죽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못난 건 어딘가 살짝 귀엽기도 하니까.

노을 보면서 좋아라 하는 댓가로 몇 분쯤 찌질한거라면. 그래 뭐 흔쾌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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