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짝 Sep 19. 2018

흔한 말을 웃어넘기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어떻게 나아지는가.

「"나도 학교 다니면서 별일 다 했지만 해란 씨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더라고. 요즘 애들 하듯이 어디 인턴, 어디 공모전 이런 식으로 채운 것도 아니야. 노동. 말 그대로 노동 현장에서 뛰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영주 씨는 말 그대로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 씨는 주먹 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어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 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 고기 좋아하나?"
고기에 비유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주먹 고기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 '조중균의 세계' 편> 중에서 -


이 글은 사람에 대한 조명은 최대한 어둡게 조정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다. 말의 주인이 아닌 에 대한 이야기 임을 밝혀두는 바.


#1. 내가 너보다 낫다는 "말"

"내가 너보다 나으니까."

몇 명이 둘러앉아 작은 술자리를 가지던 중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조금 놀랐는데, 그 뒤를 잇는 말은 "커피나 밥도 사주고 그러는 거지."였다. 맥락상, 그의 '낫다'는 '나은 상황', '여유 있는 상황'을 의미했다. 그 나름으로는 상대에 대한 애정이 담긴 말. 상대에 대한 의도적 무시는 결코 담겨 있지 않았다.


다만,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불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은. 나은.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자꾸 맴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일.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표현되는가?


'말'을 발라내서, 파고들어 가면 알 수 있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치의 계량화와 서열화'를 말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찐득찐득하게 무의식화 되어버린 바로 그것. 

앞과 뒤, 위와 아래가 분명한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숫자의 세계다. 성적이기도, 키 몸무게이기도, 연 수입이기도 한 숫자들이 사람 가치의 부등호 방향을 정한다. 한 마디로, 우리를 줄 세운다.



#2. 숫자의 세계

내가 3년 간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훈은 ABC였다. Ambition Bravery Challenge to the world.

이 멋진 라임을 교훈으로만 내버려두기 아까웠던 까닭인지. 학교는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는 자습실을 세 개로 나누고는 A자습실 - B자습실 - C자습실로 이름 붙였다.

배정 방법은 전통적인 레퍼토리 대로다.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을 기반으로 학년 전체의 종합 점수를 산출한 뒤, 1등부터 가장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을 A자습실에 먼저 배정. 다음으로 우수한 소규모의 학생들을 B자습실에 배정. A와 B에 들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C자습실로 배정하는 식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무서운 대목은 여기다.

당시엔 인식 조차 하지 못했던, 지금 돌이켜보면 소름이 돋는 무수한 대화들이다.

 가양이 친구 나양에게 묻는다. "옆 반의 걔, 어때?"  

질문을 받은 나양은 대번에 "아- 걔 A자야."라는 대답을 하고, 가양은 "아-" 한다.」

"그래서?"가 아니다. 사람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자습실 등급만으로, 아-  하고 알아듣는다.


당시 학생들 간에 공유되던 서로의 신상 정보 중 하이라이트는 자습실 등급이었고, 자습실 등급에는 등급 이상의 정보가 있었다. 전교생의 머리 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알아보는 알파벳(A, B, C)과 부등호(<, >)가 떠다녔다.

A가 B보다 공부를 잘한다 = A가 B보다 낫다

A가 B보다 키가 크다 = A가 B보다 낫다

A가 B보다 돈을 잘 번다 = A가 B보다  낫다


숫자의 세계는 언제나 누군가보다 누군가가 나을 수밖에 없는 세계다. 내가 너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친구, 너는 정식 팩에 든 고기이고 쟤는 주먹구구식으로 썬 주먹 고기라고 말하는 부장은 이렇게 우리 곁에 있게 된다.



#3. 웃어넘기고 싶지 않은 이유

흔한 말이다. 신경 끄면 될 말이다. 2018년 한국에서 이 말 하나에 신경을 못 끄면 열불 터져서 못 산다. 

그럼에도 웃어넘기고 싶지는 않다. 말은 숲이 되고, 집단의 지배적인 생각을 이루기 때문이다. 집단적 생각으로부터 한 개인이 벗어나고자 하는 일은 개인에게 극한의 도전에 가깝다. 아이 혹은 학생일수록 더더욱. 


우리 곁에 널린 말들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옆 집 애는 이번에 전교 1등 했다던데. 너는 뭐한 거야.'라는 엄마의 말에 이를 악 문 아이들이 자라서, ‘내가 너보다 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을 갖기 위해 죽어라 실제로 죽기까지 하면서 줄의 앞으로, 더 앞으로 가고자 애쓰게 된다. 참다 견디다 못해 이제 그만 줄에서 나오겠다고 하는 순간, “안 무서워?”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바로 내가 그랬듯이.


나와 너의 우열이 분명한 언어가 일상화될수록 그렇다. 말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아줌마.”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나는 회식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홀에 앉았다. 더 앉아서 술을 받아먹다가는 완전히 취할 것 같았다. “왜 자리 못 찾겠어?” 식당 아줌마가 돌아봤다. “아니요, 주먹 고기는 왜 주먹 고기예요?” 아줌마는 양푼에다 부지런히 콩나물을 무치면서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 왼손 주먹을 눈앞에 대면서 “알지? 주먹?” 했다.

  “알아요.”

  “주먹을 닮아서 그런 거야.”

 회식이 끝나고 부장과 나만 마지막 전철을 탔다. 부장은 취기가 올라오는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영주 씨, 영주 씨는 무슨 힘으로 사나?” 무슨 힘, 사는 데 무슨 힘이 필요하나. 그냥 사는 거지, 생각하다가 주먹을 부장에게 보여주었다. “주먹이래요, 주먹.” 그사이 잠이 들었는지 부장이 몸을 움찔하며 눈을 떴다. “뭐가 주먹이야?” “주먹구구 아니래요, 주먹이래요.” “그래그래, 젊은 사람들 주먹 불끈 쥐고 기운 내야지, 힘내야지. 젊음의 주먹, 좋다.” 부장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좋을 대로 해석해주는구나. 이런 게 정규직의 힘인가, 생각하고는 나도 꾸벅꾸벅 졸았다.」

-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 '조중균의 세계' 편> 중에서 -


매거진의 이전글 요리를 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