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매일. 내가 먹기 위해서.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이 간단한 시금치된장국을 끓이는 법을 모르고 살았듯이 끓이기 전에는 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쉽고 아무리 간단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기 전에는 없는 것이지. 이제는 사랑하는 내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주려고 해.」
-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 -
제주도에 와서 새로 시작한 것 한 가지는 '요리'다.
돌아 보면, 요리하는 습관에 대한 갈망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존재했던 것 같다.
다만, 서울에서는 편의점과 식당이라는 존재가 주는 편리함이 언제나 우선했다. 내가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는 수고스러운 감각을 키울 시간이 없었다. 서울은 시간을 아껴주고 편리함을 선물하는 갖가지 것들에 둘러쌓여 있지만, 이상하게 그 속에서는 항상 시간이 없었다.
이곳은 일단 만만한 편의점도, 식당도 가까이 있지 않다. 매번 끼니를 쉽게 맡길 곳이 없는 거다.
그렇게 요리의 세계가 열렸다.
요리.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를 고르고, 메뉴를 다시 고심하다가, 손으로 한 끼 먹을 음식을 만들어내는 일.
나의 입에 들어올 것들을 처음부터 바라보고 만지게 된다. 물론 리틀 포레스트 처럼 경작과 재배부터 시작되는 고렙과 비교할 순 없지만..
내 손을 거쳐 탄생한 음식의 맛에는 기복이 있다. 때론 생각보다 맛있기도, 가끔은 스스로 '윽 망했다-' 싶기도 하다. 역시 작품은 작자를 닮나 보다.
사진으로는 기복이 느껴지지 않으니, 공개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몇 장 골랐다.
아- 그리고 현재 삼시 세 끼 대신 두 끼를 먹으며 살고 있다. 두끼를 먹되, 부족한 건 간식으로 채우는 정도가 나를 유지하기에 가장 적당한 식사량임을 느꼈기에. :-)
하루의 첫끼인 아침 겸 점심은 조금 간단하고 가볍게 먹는다. 밥 보다는 빵을 선택해 채소와 함께 먹는 편이고, 밥은 먹더라도 주먹밥처럼. 첫 끼를 배부르게 먹으면 하루가 짓눌린다.
저녁 때는 비교적 한가한 오후 시간을 이용해, 해보고 싶었던 요리들을 하나하나 해치운다. 스마트폰 요리 어플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요리책들을 살피며 레시피를 쇼핑하고, 맘에 드는 것들을 모아뒀다가 하나씩 도장깨기 하는 식이다. 예전 식당에서 먹어봤던 메뉴들을 집에서 실현시키거나(치킨 난반처럼), 처음 보는 요리인데 한 눈에 반해 따라해보기도(스카치 에그처럼) 한다.
인간의 세포는 6개월마다 모두 바뀐다고 한다.
이 곳으로 내려오기 직전 6개월 동안 내가 안고 살았던 세포는 상당히 지치고, 자주 아팠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새벽 복통과 위장 장애,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렸다. 진통을 가라앉히러, 상담을 받으러 병원들을 들락거렸지만 한 편으로는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아플 수 밖에였다.
힘든 건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는데 더 열심히 했고, 배고픈 건 영양가 있는 음식을 원하는 거였는데 살뺀다고 참다가 결국 마구 먹어버리기 일쑤였으니까. 내 몸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줄 줄을 몰랐으니까 말이다.
요리를 하면서 배우고 있다. 특정 음식을 만드는 방법만이 아니라, 내가 병원에서 알약 대신 진단 받아야 했을 지 모를 무언가를 함께 배우는 중이다.
나를 먹여살린다는 감각. 스스로를 돌보고 보살피고 있다는 수고스럽고 정성스러운 이 감각들을 손으로 발로 익히고 있다.
6개월 뒤의 세포들에게는, 6개월 전의 세포들에게보다는 살짝 덜 미안하겠지.
「다시 말하지만 육체를 보살펴야 한다. 네 육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말을 들려주고(책으로라면 더 좋지) 좋은 향기를 맡게 해주어라. 해도 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몸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