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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Sep 13. 2018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시나봐요

네. 제주도로요.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시나봐요."

"네?"


퇴직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찾아간 은행에서 멍 때리고 앉아 있던 내게

업무를 보시던 직원분이 건네온 말이었다.

은행에서 나누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카테고리의 이야기가 날아오는 순간,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어 되물었다.

몇 초가 지나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베시시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따라 웃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나이네요.

저도 회사 처음 들어와서 몇 개월 내내 고민만 하다가 다른 선택을 못하고

그냥 다닌 게 어느새 16년이 넘었어요.

바쁘게 취업하느라 다른 아르바이트 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

지금 저는 이 일 밖에 못하게 되버렸네요."


-


 "충분히 그래도 돼."

그녀의 말은 마치,

서울이 나에게 건네는 인사같았다.


'드디어 떠난다'라는 생각을 안고 고향 마산을 떠나 서울행 버스를 탄지 딱 10년 만에,

다시 서울을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한 찰나에 말이다.


지난 서울 생활은 한 가지 느낌으로 축약하기 어려운 일들이 가득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고등학교 기숙생활은 서글펐고, 외로웠지만 친구들이 있어 버틸 수 있을 만큼은 따뜻했다. '정답'을 향해 나를 몰아세우며 어느 때보다 더 독해졌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떤 이유에서 자주 무너졌다.


대학생이 되어서 맞은 20대라는 새로운 세계는 신기했다. 말도  되는 일이 하루 걸러 일어나곤 했는데, 감사하게도 웃을 일이  많았다.  인생에서 가까이  이들  가장 사회적이고, 역동적이고, 시끄러운 아이들과 붙어 있던 덕분이었다.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사회적 시계' 또한 그랬다.


여느 90년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보통'사람처럼

'중학교 다음에 명문 고등학교, 명문 고등학교 다음에 명문 대학교, 명문 대학교 다음에 좋은 직장,

좋은 직장 다음에 좋은 사람, 좋은 사람 만나 남부럽지 않은 결혼, 예쁜 아이를 낳아 화목한 가정 꾸리기...'

식의 연쇄 수순이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주입되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나는 '당연히' 직장을 구해야 마땅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고,

감사한 기회로 들어간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


 이상한 일은 이거였다.

해도해도 너무한 정도로, '다 싫고, 아프다'가 나의 하루를 지배했다. 여차하면 나를 잡아삼킬 것처럼.

만약 정말 모두가 나처럼 이런 기분과 몸 상태를 견디면서 억지로 출퇴근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거라면, 직장생활이라는 게 원래 이런거라면

모두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왜 이걸 견디는 거에요?"

실제로 한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모아본 대답은  이런 것들이었는데,

"야 다 그래."

"나도 그래서 너무 그만하고 싶은데, 그만하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돈 벌어야 하니까."

"이젠 가정이 있어서 나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게 되버렸지."


참담한 기분이었다.


더 참담했던 건, 대체 정확히 뭐가 문젠지가 보이지 않았던 거지만 말이다.

회사가 나랑 맞지 않는 건지, 일이 힘든 건지,

서울 생활에 지친 건지,

그도 아니면 몸이 축난 건지.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찾아온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명확해진 건

이 문제, 즉 '내 영혼 어딘가가 심각한 불행을 겪고 있다고 느끼는 일'은 단발성이 아니라는 거였다.

내 안에서 흩날리는 '불행감'의 시작은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있었다.


'사회적 시계가 내면화되어 내 안에서 끝없이 울리는 경보음'과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간의 괴리.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엔 '내가 원하는 것' 대신 '내가 해야하는 것'을 늘 선택하는 관성.

'괴리'와 '관성'이라는 두 친구는 손을 잡고 함께 내 삶에 왜곡된 전제를 생성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하는 것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그게 잘 사는 거야.'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전제와 하루 빨리 멀어지는 것이 좋겠다.


-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나의 몸상태를 걱정한 회사 대표님은 골기를 맞추는 기능 장인 한 분을 소개해주셨다.

그 분은 나의 상태를 이렇게 진단했다.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란 게 있는데, 당신은 온통 교감 신경만 쓰고 있어.

한 마디로 늘 긴장되어 있고, 신경이 곤두서 있고, 이완을 모르는 거야.

그러면 위장 기능부터 장애가 오고, 다음은 자궁 기능이 저하돼.

계속 이렇게 살면 안돼. "


정확한 진단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 살던 방식대로 계속 이렇게 살아선 안 되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나의 몸과 마음에 균형을 찾아줄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균형잡힌 날개를 되찾아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날아가는 변화가 나에겐 절실했다.



노을빛 내려 앉은 제주

이러한 연유로

나는 여기, 제주도로 날아왔다.


이 세상 아름다운 푸른 빛을 골라 담아 펼쳐 놓은 제주 바다 위에서 반짝 거리는 물결을 보며,

이런 이야기들을 쓰고 있자니 모든 게 거짓말같다. (한달이 채 되지 않은 고작 몇 주전 이야기인데.)


사람들에게 퇴사한다고 했을 때, '이제 뭐할건지' 물으면 제주도로 간다고 답했고.

'제주도에선 뭐할건지' 다시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쓰고 싶을 때 쓰고.

원하는 일이 생기면 그걸 하고. 나에게 충실하려고."


은행에서 만난 그녀의 말마따나, 나에게 살짝 새로운 꿈이 생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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