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별 입학설명회를 다녀와서2
조기 대선 정국에서 책을 읽는다. 힐러리 맨틀의 역사 소설이다. 부커상을 2번이나 수상한 화려한 이력의 낯선 영국 작가이다.
'울프홀1,2', '시체들을 끌어내라', '혁명극장1,2'
앞의 두권은 토마스 크롬웰을 주인공으로 헨리8세와 앤 불린, 토마스모어가 등장하는 16세기 초의 영국의 궁정을 그리고 있다. 뒤의 '혁명극장'은 프랑스 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 데물랭, 당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대한 분량이고, 번역투의 만연체는 읽기에 편하지 않다. 주인공인 토마스 크롬웰이나 로베스피에르에게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인물은 나의 시각에서 매력적이지 않다. 다만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혁명극장'은 2권에서 포기했다. 무엇보다 반신욕을 하면서 읽기에도 들고 다니기에도 너무 무거웠다.
5월 한달동안 토요일 혹은 주중에도 대학 입학 설명회를 다녔다. 가방에는 무거운 힐러리 맨틀의 역사소설이 들어 있었다. 설명회를 기다리며 쉬는 시간을 때울 심산이었는데, 그런 여유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대학에서 나눠진 입시 전형 자료집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작 시간이 되곤 했다.
입학설명회라는 대장정을 마치고 드는 생각은 조금 웃기다.
지역을 찾아온 대학마다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내가 느끼는 이 분위기는 사실 행사에 참여하는 입학처장이나 입학사정관들의 분위기일수도 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수도 있겠으나, 입학처장이나 입학사정관들이 해당학교 출신히거나 해당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점을 상기할때 내가 감지한 분위기가 그리 생뚱맞은것은 아닐것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선 성균관부터 시작해본다. 성균관대학은 세련되고 예의바른 강남 아저씨
연세대(학부모 신청에 실패해서 교사설명회에 다녀왔다)는 자유로운 지식인
고려대는 효율과 능률을 추구하는 일잘러 공무원,
서울대는 매사 진지한 교수님
한양대는 오래된 강의실에서 자전거 바퀴를 고치고 있을것 같은 오타쿠 엔지니어
중앙대는 말잘하고 영리한 꾀돌이 남고생
경희대는 스냅 사진기를 들고 북촌을 거닐고 있을것같은 예술가
설명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문득 문득 떠올랐던 이미지들을 정리해봤다.
그저 아주 개인적인 나의 단상일뿐이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한 어떤 논리도 이유도 없다.
서울대 입학설명회를 담당했던 입학사정관은 이런 말을 했다.
'다양한 종들이 존재하는 자연 생태계가 위기와 재난을 더 잘 극복할수 있듯이, 우리 서울대도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고자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서울대의 입시 전형이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수능점수나 내신점수를 소수점까지 줄세워 학생을 선발하지 않겠다. 일반고이든, 특목고인든, 자사고이든 농어촌고이든, 자신이 처한 배경과 문화 안에서 훌륭한 자질을 선보이는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서울대의 이런 의지는 2028 대입에서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날것이라는 예측을 해본다. 어쩌면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의 이러한 태도가 학부모들의 갑갑증을 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에.
설명회에 다녀온뒤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오~ 너는 똭 서울대 인재형이야!! 인제 공부만 하면 되겠어~'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지원자들의 생기부를 볼때마다 한편의 장구한 문학 작품을 보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교사들의 노고에 항상 감탄합니다. 생기부는 한 학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자서전같은 것입니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시조새격인 경희대는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지역 교사들에게 공개했는데, 이른바 모의 생기부 평가. '교사인 당신이 직접 입학사정관이 되어 성적대가 비슷한 학생의 생기부를 평가하고 실제 합격 여부를 맞춰라'라는 내용으로 시뮬레이션 강의를 실시했다. 입학사정관과 일반 교사의 생기부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았다. 마치 겹쳐 그린 두개의 그림처럼 미묘하게 서로 어긋나는것 같았다. 교사들은 입학사정관보다 좀더 보수적으로 생기부를 바라봤다.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모나지 않는 생기부를 좋아했다. 반면에 입학사정관은 다소 모난 부분이 있더라도 학생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생기부를 선호하는듯했다. 중요한건, 지루하고 동의어 반복 같은 생기부안에서도 학생의 개성과 특징이 모래 안의 보물처럼 드러난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아들은 자신감을 잃는것 같다. 학업에 매진하지도 않는 것 같다.
3,5,6,7월. 다달이 계속되는 모의고사와 학원 일정에 지쳐가는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아들을 향한 기대감을 조금씩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 한마디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아들아, 고마웠어...덕분에 달콤한 꿈을 꿀수 있었어'
연세대 설명회였던것 같다.
사회를 보는 입학사정관이 '중세의 대학은 신학, 철학, 의학, 법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대학은 연세대가 유일하다고 할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데,
19살 소녀처럼 막 가슴이 설레였다.
유명 대학들의 입학 설명회를 다니면서 솔직히 좀 신났었다.
턱없이 높은 우주 상향의 대학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