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中 문학적 건망증
…모든 것이 무(無)로 와해되어 버린다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인가를 한단 말인가?….
겨우 여섯 장 남짓한 내용에 참 많은 공감을 했다. 책을 읽는 중에도 그 내용을 까먹는 주인공과 나, 어떠한 큰 감명을 받아도 결국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 그러나 그것이 주었던 느낌은 기억해낼 수 있는 것.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있을까?
과거 요시모토 바나나의 '도마뱀'을 읽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의 허벅지에 도마뱀 문신이 있었다는 것, 책의 내용도 꽤 재밌었다는 기억이 떠올라서 여행하는 동안 그 책과 함께하기로 했다. 마침내 시애틀에서 그 책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문체가 너무 거북했다. 이게 정말 내가 재밌게 읽었던 그 책이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예전엔 좋았던 것이 지금은 심지어 거북해지기까지 했다니, 책의 내용이 바뀐 것도 아닐 텐데.
좋았던 것이 싫어지기도 하며 즐거웠던 것이 지루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거부감 들었던 것이 좋아지기도 한다. <도마뱀>이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읽지 않을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너무나 좋은 이 장소가 나중에 다시 방문했을 때 어떻게 변할지 내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다. 여전히 좋거나, 지루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모든 게 변한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변화나 환경의 변화나 물리적 변화, 또는 그것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 모든 것이 옳거나 그르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2018.08.06 월요일 산타모니카 해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