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면역력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를 읽고

by 샐러리

*책의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을 겪기보다는 평온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 굳이 맞이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을 피한다고만 해서 인생이 진정으로 평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인생의 고난은 청년기 시절 이미 모두 겪었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고난은 사전에 차단하려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앞으로 평온한 삶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고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그의 삶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나단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곧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24호실의 구매을 앞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방 앞 복도에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비둘기는 조나단을 완벽하게 망가뜨렸다. 부리로 쪼거나 위협적인 날갯짓을 한 것도 아닌데 조나단은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공포를 느꼈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비둘기가 자신의 방 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쫓아내거나, 너무 큰 공포에 사로잡혀 차마 그럴 수 없었다면 그냥 외면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한 번쯤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으로 여기며 ‘오늘 아침은 약간 재수가 없구나.’ 정도의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약 20여 년간 고난을 마주하지 않아 그것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조나단은 작은 새 한 마리에도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나는 공포에 빠진 조나단의 모습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평온함을 원하고 불행을 싫어하며 되도록 힘든 상황은 피하고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나 역시도 피할 수 있는 모든 불행은 피했고 그것이 나에게 안정을 주며 결과적으로 내 삶을 더욱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불행을 겪었을 때 그것을 이겨내거나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해서 마치 비둘기 한 마리에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조나단과 같이 행동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예방접종’을 한다. 사전에 따르면 예방접종의 뜻은 「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미생물의 병원성을 죽이거나 약하게 하여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말 그대로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사람에게 투여하여 앞으로의 더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면역을 키우는 것이다. 나는 이 ‘예방접종’이 사람의 신체뿐만 아니라 내면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생에서 마주하는 고난과 역경을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받아들이며 앞으로 마주할 수도 있는 더 큰 고난을 예방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면역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누군가에게는 마냥 사소할 수 있는 비둘기를 마주하는 일이 다른 이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처럼.


비둘기 사건을 시작으로 조나단에게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불행한 일들이 시작된다.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의 실수부터, 자신이 혐오했던 거지의 배설물 곁에서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일로 인해 그는 완벽하게 하루를 망쳐버린다. 그리고 그의 내면의 복잡함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로 시작했던 분노를 자기혐오, 식당을 청소해주는 부인, 거지, 노천카페의 웨이터와 손님들, 심지어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비둘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상에게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하게 분출하였다. 일과를 마친 조나단은 차마 비둘기를 마주했던 자신의 안식처인 24호로 돌아가지 못하고 호텔을 잡아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그리고 그는 끝내 자살을 결심하며 마지막 잠자리에 든다. 강한 비바람이 불던 새벽 천둥소리에 잠에서 깬 조나단은 순간적으로 낯선 공간과 상황에 당황하여 비둘기를 만났을 때보다 더 강한, 마치 세계가 종말 할 것 같다는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비둘기를 마주했을 때와는 다르게 점차 안정을 찾고, 상황을 파악하여 마침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품고 호텔을 나선다. 비를 맞고 물웅덩이를 밟으며 비둘기를 마주했던 24호로 돌아가는 조나단은 심지어 신나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조나단이 비둘기를 통해 불행에 대한 면역력을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둘기와 천둥 두 가지의 사건 모두 조나단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일으켰지만, 천둥 사건에서 조나단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앞서 일어났던 비둘기 사건까지도 해결할 의지를 보여줬다. 비둘기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가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더 큰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조나단이 보여준 불행의 극복은 인생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무조건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 짧은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내면의 공포와 심리를 자세하고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여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고통과 불행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평안한 삶을 위해 스스로 만든, 결론적으로는 독이 된 많은 규칙과 약 20여 년의 단절의 벽에서 마침내 자유로워진 조나단의 모습은 막힌 속을 뻥 뚫은 것처럼 시원하기까지 하다. 소설의 문체와 내용 모두 흡입력이 강하고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불행에 대해 면역력이 약한 사람뿐만 아니라 앞으로 크고 작은 불행을 마주할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상처와 고통이 너무 싫어서 그것을 외면했었던, 또는 여전히 외면하는 중인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조나단이 그랬듯 고난을 극복할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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