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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Oct 30. 2020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진민영

오늘 하루를 더 살아갈 힘

 느낌표와 물음표가 공존하는 삶은 어느 것 하나만 있는 삶보다 더 가슴이 뛴다.

 


 이 책은 삶에 지친 마음이 들었을 때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해볼 수 있는지에 대해 작가가 겪은 경험을 녹여주면서 알려주었다. 그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더할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무엇을 덜고 줄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문제 해결에 새 지평이 열린다. 더 많은 경우 우리 삶에 보다 유용한 수식은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다.'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도 항상 마음속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고, 또 알 수 없는 욕구가 생겨나곤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너무 많은 물건, 너무 많은 계획, 너무 많은 걱정때문에 항상 더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주어에서 나를 줄이고 대화의 주도권을 내려놓자. 어차피 내 세계에서 주인공은 변함없이 나다. 청자의 마음가짐은 신중한 화자를 만들고,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서 이 말을 왜 하려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된다. 말의 역할을 숙고하는 참여자가 있는 대화는 결단코 아무 말 대잔치가 될 수 없다'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대목에서 사무실의 누군가가 생각났다. 항상 큰소리로 자신이 했던 일과 자기 가족의 일들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람과 그 주변 인물들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으면 참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그게 바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해대는 '아무 말 대잔치' 여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도 거기에 맞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이 들곤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냥 내가 스스로 신중한 청자가 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도 대화 흐름의 주도권을 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일 '연설'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를 위해서도 노력해 볼만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감탄만 하는 인생에서 나 자신은 언제나 관람하는 객체다. 깊은 감명을 받아 눈물을 쏟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도 언제까지나 객석에서 느낄 감동이다. 소비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창작과 생산은 상호 교환이자 나로 시작해서 타인으로 수렴된다.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는 활동이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공존하는 삶은 어느 것 하나만 있는 삶보다 더 가슴이 뛴다.'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요즘 일 외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취미로 하면서 언젠가는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소비만 할 때보다 낯설고 서툴지만,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이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삶의 활력소를 얻기 위해서는 그리 거창한 것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해봤던 경험과 그것이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이 있어도, 돈이 많아도, 친구가 많아도 결국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주체성뿐이다. 모습은 다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대체로 공감할 만한 내용인 것 같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한마디로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과 무기력함 때문이었다. 직장-집의 순환 속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고, 상사와 동료의 모습을 볼 때도 닮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희망이 없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다들 부럽다고, 좋겠다고 말을 하는 상황은 점점 더 외로운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래서 많은 책 중에서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분명 작가는 프리랜서의 입장에서 말을 하면서, 회사가 맞는 사람들은 프리랜서를 하게 되면 후회할 거라는 말을 주로 하고 있지만, 본인이 프리랜서인 상태에서 하는 말임을 생각하면 설득이 되지 않았다. 또 심사숙고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내 삶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가장 큰 틀에서 보면 소비와 생산이라는 관점을 상기시켜주었는데, 내가 요즘 지나치게 소비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삶에 대한 불만족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을 파악하면 해결책이 보이는 것처럼, 나 스스로는 인정하려들지 않았던 원인을 타인의 말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남이든, 나 자신이든, 누군가를 탓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내게, 잘못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저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고민들도 작가의 단순하고 명쾌한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하루를 더 살아갈 힘을 책을 통해 얻었다. 올해도 벌써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못 한 것보다는 했던 것을 더 많이 생각해보며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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