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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Oct 30. 2020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차별이 몸에 새기는 상처

공동체와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은 개인의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알아보는 사회역학을 통해 사회 현상을 분석해 나간다. 저자는 '건강은 공동체의 핵심을 기본으로,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은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되며, 공동체와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차별과 가난이 몸에 새기는 상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건강,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소방공무원의 건강,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의 건강,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건강, 재소자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건강상태와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재난'과도 같은 상황이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되지 못한 상태로 지속될 때, 모든 부담을 개인이 짊어져서는 안 되고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입안자의 책무이지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소 매일같이 보도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입은 육체적,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다 보상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상대적으로 큰 피해가 아닐지 몰라도 책에서는 전공의들이 지금처럼 과도하게 일할 때 환자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친구 중에 간호사로 일하는 친구를 떠올려 보면 조금 더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의사, 간호사들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그들이 아픈 것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면 환자들도 지금처럼 맘 편히 의사와 간호사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사회에서 외부요인으로 인해 누군가 아프다는 것은 나 자신도 언젠가 똑같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결국 한 사람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여러가지 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과 나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안타깝다는 마음만 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언젠가는 내가 사회적 소수, 약자가 되어 아프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사회문제라도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지만 어떤 사회적 문제가 일어났을 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변화한 것처럼 이 관심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세월호 사고와 비교되는 일본의 사례이다. 쓰나미 등 대형 재난을 겪은 지역에는 정부가 여러 지원을 수행하지만, 누구도 그 내용을 입에 올리지 않고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다. 지원 내역을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되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당사자가 애도하고 치유에 집중하도록 사회가 침묵해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감수성이고 실력이다. 이 내용을 본 순간 머리가 띵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인식이 바탕이 된 거라면 사회가 만들 수 있는 굉장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피해자에 대한 보상액에 대해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오히려 잘못한 사람에 대한 비리에는 침묵하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와는 전혀 딴 세계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작은 행동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마음일지를 먼저 조심하고 행한다면 상처회복도 훨씬 빠르고 큰 위로와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계층 간 불신과 갈등을 넘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개인이 늘어난다면 훨씬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사춘기 이후로 눈에 띄게 예민해지고 자기방어적이게 되고 머리도 자주 아픈 게 내가 상처를 받았던 것들의 증상인 것 같다. 사춘기를 한참 벗어난 지금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도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타이레놀을 먹어야지만 두통이 가라앉게 되었다.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어도, 일단 어떤 것에 신경을 쓰게되면 한 번 아프기 시작한 머리는 자연적으로는 낫지 않고 소화불량으로까지 이어져, 다른 일상생활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심할 경우 약을 먹어야만 한다. 병원에 가도, 한의원에 가도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는 걸 보면, 내 증상도 다른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싶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식물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식물 가꾸는 것으로 힐링을 하고 있다. 식물들을 돌보면서 내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을 가꾸고 돌본다는 것과 어떤 것에 집중한다는 것이 상처나 고통에서부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돌본 만큼 힘차게 자라 주는 식물과 함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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