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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Oct 30. 2020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의 비이성과 모순에 대해

2X2는 나의 의지가 없어도 4가 될 텐데. 자기 의지라는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이오!'


 이 작품은 전직 관리였던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지하에 살면서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과 역설적인 말들을 늘어놓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나온다. 그러다가 '진눈깨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며 십여년 전의 모습을 회상하게 된다. 이 주인공이 어떻게 유년시절을 보냈고, 관리가 되어 우연히 마주친 장교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 내용, 동창들과 만나 환송회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내용, 그리고 하인 아폴론과 월급을 가지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중에 집으로 찾아온 리자와 나누는 비이성적인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중에서 길지 않은 소설이어서 선택한 이유도 있었는데,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난해한 편이었다. 처음 작품을 읽으면서 도대체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참고 끝까지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주인공의 성격과 지하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에 대해서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세상에 합류되길 거부하고 한없이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나는 그가 누구보다 세상에 속하길 원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동창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모습, 리자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그가 타인과의 삶에 굉장히 서투르고 충분한 교감을 나눌 수 없는 성향을 타고났지만 동시에 그들과 편하게 대화하고 어울리기를 원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인간이기에 정형화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드러날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하에서는 이성과 감성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상에서는 광기어린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나타난다. 굉장히 모순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떤 인간이라도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속마음이 이 인물을 통해서 표현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기존의 작품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성향의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특성을 잘 표현해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읽어나가다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느꼈던 비이성적인 감정들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표현해주기도 해서 가끔은 속이 후련한 느낌도 들었고,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곱씹게 되는 책이었다.

 저자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이란 하나의 어떤 무엇으로 정형화될 수 없고, 이성과 판단력만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운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2X2는 나의 의지가 없어도 4가 될 텐데. 자기 의지라는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이오!'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인간은 어리석기 그지없어 심지어 자기에게 해로운 것을 일부러, 의식적으로 바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아름답고 숭고한 것'에 목말라한다. 이런 두 가지 감정이 인간을 끊임없이 정체되어 있지 않도록 고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살아가면서 겪는 무수한 갈등상황과 마음의 소리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에 부정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유지하게 되면 결국 타인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신을 '지하'에 가두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는 삶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지하에서 살아가다도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지상으로 나올 수도 있고, 수많은 갈등이 곧 삶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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