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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Oct 29. 2020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첫 번째 인상 깊었던 구절은, '영혼은 셋 중 한 가지 방식으로 파괴될 수 있다. 남들이 당신에게 한 짓으로, 남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게 만든 짓으로, 당신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한 짓으로. 셋 중 어느 것이든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세 가지가 다 있다면 그 결과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겠지만.'이다. 이 구절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살아가면서 나를 대하는 타인의 태도나 말투로 인해 모욕감을 느끼게 될 때 남들이 나에게 한 짓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이겠고, 내가 내 소신껏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해달라는 대로 했을 경우 남들이 나로 하여금 하게 만든 짓으로 인해 내가 파괴되는 경우이겠고, 내가 내 욕심때문에 올바른 길이 아닌 그릇된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나아갈 때가 나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한 짓으로 인해 나를 파괴시키는 경우일 것이다. 이 중 특히 남들이 나로 하여금 하게 만든 짓으로 인해 나를 파괴시키는 경우가 가장 위험한 것 같다. 이 경우에는 남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스스로의 선택에 떳떳할 수도 없다. 일을 할 때에도 내가 내 양심을 걸고 주인의식을 갖고 문제해결을 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내 책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기보다는 항상 책임감있게, 내게 주어진 일을 다른 각도에서도 여러번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능력을 키워야겠다.

  또 기억에 남는 구절은,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이다. 내가 과연 어린 시절 꿈꿨던 내 모습인지를 생각해보면 전혀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 스스로 더 나은 나 자신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비극적인 모습으로 삶이 끝나버릴 것이다. 남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나의 행동들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늘 스스로를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면, 그래도 잘 살았노라고 삶을 끝낼 때에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인상 깊었던 구절은 '쌓이고 쌓여 거대한 비극을 이룬 조그만 소극들의 방대한 목록이 아닌가?'이다. 이 구절은 우리나라 전통을 이루고 있는 골계미를 떠올리게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풍자와 해학은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오늘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하루라도 내일 다시 보면 웃을 수 있는 그런 하루일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비극이라고 말하기엔 그 안에 뼈있는 소극들이 너무도 많다. 인생이란 정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 같고, 훗날 사람들이 내 인생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할지 참 궁금하다. 결국 힘든 하루에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이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다.

  이 소설은 공산주의 소련을 배경으로 한다. 그 안에서 음악가로 삶을 살았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을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지만, 양심과 창작 사이에서 고뇌했던 인물이다. 그는 겉으로는 소련의 국가정책에 순응한 기회주의자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창작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가면을 썼다는 새로운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예술가로서의 양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한 예술가의 삶과 음악을 통해서도 배울 게 참 많다.

  이 소설의 제목인 '시대의 소음'은 독재체제에서 피할 수 없는 공포, 가난, 억압 등 사회의 부조리함을 상징하며, 쇼스타코비치라는 한 예술가를 통해 시대의 소음에 굴복하지 않았던 양심의 소리를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의 체제 안에서 숨길 수밖에 없었던 양심의 소리가 결국 다음 세대에서는 밖으로 드러날 수 있다. 또한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잘못된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재평가받는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금도 누군가는 안위를 위해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는 길을 택했고, 누군가는 그래도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떤 거창한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보다 하루하루 나의 양심과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것이다. 요즘 일시적 행복에만 연연했던 나에게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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