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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Oct 29. 2020

경애의 마음/ 김금희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의 이야기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경애의 마음'이 제목이지만, 상수의 시선으로 시작해 끝나는 듯한 느낌의 이야기이다. 상수는 한 미싱 회사의 팀장이고, 영업에 대한 어떤 자부심이 있고, '언니는 죄가 없다'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수많은 '언니'들에게 정성어린 답장을 써주며, 부당하고 위선적인 대우를 받으면 지나치게 화를 내는 성격에,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어린 시절엔 어머니를 외롭게 떠나보내고, 가장 친한 친구도 잃어버린, 어쩌면 여자보다 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남들과는 좀 많이 다른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리고 경애는 상수의 시선을 따라서 천천히 드러나는 인물인데, 처음에는 노동파업에 삭발까지 하며 참여해 회사에서 암암리에 찍혀버린 행동적인 인물이며, 간이창고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어린시절을 어머니와 단둘이 미용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낸, 영화동아리에서 만난 E와 만났고, 너무 일찍 따뜻함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다음 사랑을 했던 남자와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유로 헤어짐에 아파하고 또 그리워하는 순수한, 어떤 상황에서도 단순 명료 쿨한 어투인, 부조리 안에서도 스스로의 판단으로 일어서는, 상수의 눈에는 항상 '경애답다'는 느낌을 받게하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다른 두 인물이 같은 팀이 되는 인연으로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과거와 속마음이 교차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내용이다. 두 사람이 교차되는 과거와 현재의 내용으로는 어린시절 가장 친한 친구E를 동시에 잃었고,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에 경애가 익명으로 사연을 올리고 상수가 익명으로 답해주면서 서로를 인식하게 되고, 마지막 베트남으로 같이 파견을 갔을 때 회사의 내부 비리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일치되는 이 3가지 과정이 가장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을 때, 둘은 모든 과거와 어려운 생각을 내면, 외면적으로 어느 정도 해결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만나는, 어둡지만 하얀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 회상씬이 종종 등장하면서 현재와의 교차점을 자꾸 보여주면서 호기심을 일으키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형식으로 흘러간다. 처음과는 정말 다르게 이야기가 흘러 갈수록 상수와 경애는 끌릴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상대가 되어가고, 마침내는 서로의 삶에 공감하고 상처를 극복하고 함께 나아가게 된다. 나는 상수와 경애를 비롯한 조선생, 창식씨, 헬레나, 에일린, 오과장, 김부장, 일영, 산주, 은총, 유경 등 다른 등장인물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이 영향을 받고 나아가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조그만 날갯짓이 나중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회오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다운 것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인연과 우연이 존재하고 나도 모르는 그런 유대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정확히는 아니지만 신비롭다는 생각과, 긍정이 만들어내는 어떤 힘과 희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상수와 경애의 과거가 나올 때는 너무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아팠는데, 결국 둘이 같은 마음으로 회복의 어떤 에너지를 가지게 될 수 있어 안도감이 들었던, 정말 오랜만에 감정을 이입해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작가는 짧은 순간순간의 장면 속에서 추상적인 감정의 부분을 시각, 청각, 촉각과 구체적인 이미지와 행동, 느낌으로 연상할 수 있게 정말 잘 표현해냈는데, 그 중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들을 정리해보았다.

  경애가 일영에게 하는 말 중에서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 자신도 누구를 칭찬하려고 할 때 꼭 비교대상을 찾아 대부분 나보다 얼마큼 뛰어난지를 들어 이해시키려고 했던 적이 많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장점을 말하거나 잘못을 말하게 될 때 누군가와 비교해서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또 한 장면은 경애가 산주와 헤어진 후 옥수수를 먹으며 '경애가 이 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고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으로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부분이었다. 나도 헤어짐을 맞닥뜨렸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껴서 더 공감이 되었다. 지금 당장 여기 안에서 나는 혼자 너무나 외롭지만 그래도 바깥의 새소리나 햇빛 등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공간은 정말 너무나 절망적이고 슬픈 장소였지만 그래도 바깥은 삶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고, 나도 언젠가는 나가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슬프고 외로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감정에 완전히 젖어있어야 했지만, 끝이 있는 불행인 것이다. 그 꼭 필요한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고 지내고 나서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상수가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을 때, '언덕배기에 휩쓸려 내려오는 빗물을 거스를 때 느껴지던 그 섬뜩한 차가움이, 각오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각오는 그렇게 대단치 않은 것들이 버려지는 가운데 무언가가 무언가를 거스르는 마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에서 상수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어린 상수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무언가 각오를 해야만 했고, 인내해야만 했던 감정들이 보여진다. 소중한 어떤 것을 잃었을 때, 순간 멍해지고 실감이 나지 않는데, 상수도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서 그 순간 자신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쏟아져 흘러내려오는 물길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려는 어린 상수의 슬픔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호찌민에서 경애와 상수가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서 '상수가 경애를 전혀 모르던 시절에도 있던 경애스러움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상수가 결국 경애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라도 경애가 경애인 것은 계속되겠지. 생활을 위해 밥을 챙겨먹고 필요하면 달리고 어쩔 때는 화도 내고 울고 차갑게 뒤돌아서기도 하며 살겠지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그것은 평소에 전혀 가져보지 못한 극강의 다정함이라서 상수는 자기도 모르게 경애의 손을 잡고 말았다.'는 장면이 이 소설 중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상수가 바라봤던 경애와 지금 바라보는 경애는 항상 경애다웠지만, 상수의 관점이 특별히 사랑스럽게 바뀐 것이다. 경애의 과거와 속마음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상수가 경애의 상처를 안쓰럽게 생각하다가 결국 옆에서 같이 있어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 부분에서 동시에 내가 상수를 바라보는 관점도 점점 바뀌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겉모습으로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는 직접 그 사람을 겪어보고 부딪혀 보는 게 어쩌면 예의이고 도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진정으로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나에게 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요즘에는 나와 다른 사람과는 먼저 거리를 두고 선을 그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부분과 좋은 부분을 더 많이 보는 게 필요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나와 닮은, 오히려 더 나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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