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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Nov 17. 2020

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정나영

정직한 신념의 가치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움직였다.
                                                                                                                   

 직장생활이 벌써 5년 차에 접어들고 있는데, 첫 직장생활이다보니 실수도 많고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지금은 조금 안정적이 되어 이렇게 집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마련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항상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특히 남들이 다 말리는 창업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는데, 나 스스로의 결정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 그만큼 위험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한 번쯤은 나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저자는 창업에 대한 지식적인 내용보다는, 손님의 관점에서 가게 운영을 함에 있어 중요한 가치들을 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중 지역서점인 '애비드 서점'에 관한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영문학도인 학생의 제안으로 서점 낭독회에 초대를 받아서 애비드 서점을 방문하게 되는데, 애비드 서점은 10년밖에 되지 않은 서점이지만 고풍스러운 외관을 가졌고,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덕분에  그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서점이다. 이런 서점 낭독회의 모습이 묘사된 부분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에 보이는 것처럼 기억에 남는다.


 '그랬다. 애비드 서점은 그 무명의 젊은 작가들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신비로웠다. 젊고 힙한 청년들이 모여 설립하고 일하는 이 서점은 작은 대학 도시의 젊은이들, 특히 주류 문화에 편입하지 않는 순수하고 열의에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동조하고 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서점과 젊은이들의 낭독회는 그들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고 이웃들을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애비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였고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움직였다.'


 나 또한 문학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됐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면서 잠깐 잊고 있었던 문학의 순수한 가치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서점이 동네의 청년들을 부르고 모이게 할 수 있는 문화라니. 이런 동네에서 이런 이웃들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을 해본다. 청년은 순수함으로 인해 가능성이 무한한 존재다. 이런 순수성을 지켜주는 든든한 책방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그곳은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가게들은 직원이나 참여자들이 주로 대학생들이었는데,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주체적으로, 책임감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온다. 투스토리 커피하우스의 '마크', 칼디스의 '제이크', 애비드 서점의 '크리스틴'이 그러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고, 그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그것에 전문가가 되어 세계를 확장시키고, 맡은 분야에 최선을 다 한다. 먼 곳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년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은 노량진과 클럽이 아닐까? 코로나때문에 이런 문화도 차츰 바뀌어 갈지도 모르겠다. 우선 지역의 가까운 거리의 소공동체가 많이 생겨나야만 다시 정다운 문화가 돌아올 것 같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또 하나는 40년 동안 한결같이 인디 록 음악을 파는 '블루노트'다. 블루노트는 컬럼비아에서 유명한 라이브 뮤직홀로, 다양한 인디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곳인 만큼 외관이나 구성요소가 변할 법도 한데, 블루노트는 초심을 잃지 않는 한결같은 퀄리티를 제공하면서 세대를 넘어 사랑을 받고 있다.


 '블루노트는 40년을 한결같이 락 인디음악을 판다. 인디음악을 파는 가게인지, 인디음악을 설파하는 문화 단체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건 어떠한가? 블루노트가 고집스럽게 팔고 있는 인디음악으로 그들은 인디 문화를 만들고 키우고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딱 한 가지만 파는 그들인데 젊은이들은 그런 그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이 파는 것에 즐거워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에 빠져든다... 블루노트는 이렇게 젊은이들의 음악으로 컬럼비아라는 작은 도시의 문화를 힙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여기서 또다시 깨달은 한 가지 점은, 바로 청년세대의 중요성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을 너무 무시하고, 원래 그래도 되는 것처럼 쉽게 생각해버린다. 어린아이와 노인을 위한 것들에는 무척이나 관대하지만,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가거나 청년을 우대해주는 꼴은 보기 싫은 듯하다. 하지만 청년은 매우 섬세하게 잘 돌봐줘야 하는 중요한 계층이다. 오히려 어린아이보다 훨씬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누구나 청년이었기에, 분명 그랬음을 기억할 것이다. 건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문화 속에서, 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청년은 없을 것이다. 청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보여주고 싶고, 쓸모가 있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렇지 못할 때 자신과 주변을 원망하는 마음도 커지는 것이다. 대학교에 가면 무난하게 학점을 따기 위한 하기 싫은 공부의 연속이고, 졸업과 동시에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공부가 시작된다. 어찌어찌 취업을 하면 자신이 지금껏 배워왔던 선량하고 공정한 가치들과는 너무도 다른 가치관에 적응해야만 하며, 결국 적응한 대가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이 사회는 청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게 설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회 속에서만 자신을 보지 않고 눈을 조금만 돌려 정당한 자신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청년들이 있기에 아직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의지를 갖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천천히 기다리면서 진심으로 믿고 지지해준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하게 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누리지 못했다고 모두가 똑같이 아파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세대는 넘어가야만 하기에, 조금만 생각을 바꿔 다가올 바로 다음 세대를 좀 더 믿어주는 수밖에.


 마지막으로는 유기농 면 회사인  '스마트 버드 클로딩'을 운영하는 '재닛'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재닛은 1인 기업가이다. 원가가 높은 친환경 유기농 면만을 공정한 공장에서만 생산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정적 형편상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고 수행해야만 했다.


 '철학과 신념은 이처럼 사업가가 장기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일궈 나갈 이유가 되고 버팀목이 된다... 이처럼 자기 철학이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만큼이나 사업체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업체의 사업 철학과 신념,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는 바로 사업체 가게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는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오래도록 유대관계를 형성하려면 우리는 상대의 정서적 정체성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며 이것이 나와 잘 맞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가 일관되고 정직하게 표현하는 신념과 가치 등을 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듣고 이야기 나눠봐야 하는 것이다. 명확함, 정직함, 일관됨, 지속적인 소통 외에 지름길은 없다.'


 이처럼 가게 하나를 꾸려나가려면 정직한 신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나의 생각을 먼저 정리해서 만들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러한 의식은 남들도 깨울 수 있고, 나아가 함께할 수도 있는 힘을 지녔다.


 우리 사회와는 다른 면이 많이 있었지만, 나의 세상과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에 대해 읽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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