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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Dec 21. 202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차고 넘치는 살아갈 이유

Count your blessings.


 이 책은 내가 수험생활을 접어야 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을 홀로 걸어가는 느낌을 받았을 때 짧지만 가장 깊이 내 마음을 달래주었던 책이었다. 가득 쌓인 수험서를 보며 다른 책을 사서 읽는다는 것은 사치인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잠깐 부린 여유가 오히려 복잡한 마음을 정돈해주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올 한 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요즘, 이 책의 제목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처음 읽는 책인 양 다시 한줄한줄 읽어 내려갔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살아있음'에 대해서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간절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시기이다. 나만 힘들고 불행하다고 느꼈던 수험생 시절과는 또 다르게, 모두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요즘, 이 책이 새롭게 읽혔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일전에 이 책에 대해 모임에서 글을 썼을 때, '이런 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라고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뭔가 민망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기억이다. 그 의미가 정확하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글을 쓰는 지금, 그 사람도 지금은 다른 생각으로 이런 내용의 글을 바라보고 있을지 어떨지 궁금한 마음도 들어서 진부하지만 진심인 내 생각을 다시 한번 꺼내본다.



...그래서 내가 그 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에도 시시한 잡동사니가 가득 들었을 수 있고 비닐봉지에도 금덩어리가 담겨 있을 수 있다. ... 내가 살아 보니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을 잘게 조각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남과 나를 경쟁하면서 살면 항상 쫓기는 듯한 강박관념 속에서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나를 아껴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다. Count your blessings. 내 주변에 나를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수많은 축복들을 구체적으로 세어보다 보면 내가 살아갈 이유가 차고 넘친다.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멋진 풍경들을 눈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등등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진부한 것들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면 남과의 비교와 갈등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나,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과 비교되는 나보다는 나 자체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 안을 다듬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만의 길을 묵묵히 가려고 노력한다면, 그러한 비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위해 계속 나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 안에 숨어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따라 더 기세가 등등한 내 마음속의 도깨비도 이 말에는 반기를 들지 못했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행복하고, 내일을 위한 희망이 있어 행복하고,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은 나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하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너무나 복잡하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게 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나도 일이 꼬이고, 안 좋은 일이 연속으로 터지고, 우울함에 파묻힐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애타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어떤 기쁨이 찾아왔을 때 온 마음이 환하게 빛나면서, 한순간 모든 것들이 즐겁고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에서 나온 말처럼, 내 안에 있는 3퍼센트의 좋은 마음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쁜 마음까지도 다 밝게 물들여버린다. '이 맛에 살지' 할 때 '이 맛'이 즉 이 3퍼센트가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작고 사소한 가치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래서 결국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고 나서야 주변의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어떤 무언가를 목표로 세우고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감을 맞볼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안 속에서 버텨나갈 때, 우리는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항상 고민을 거듭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떤 멋있고 훌륭한 것들을 통해서 위안을 얻는 게 아닌, 흔하디 흔한 너무나도 익숙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비로소 위로를 받는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긍정과 의지를 잃지 않았던 씩씩한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코로나로 지쳐가는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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