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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May 02. 2021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균형과 조화

모든 시작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 주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이 소설은 카스탈리엔이라는 교육주에 의해서 학자로 양성된 영재 중의 한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특이하게도 논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서문,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가 나오고, 2부에서는 전기의 후반부와 요제프 크네히트의 유고(학생 시절과 연구생 시절의 시, 세 편의 이력서)로 마무리된다.


 이 시대의 카스탈리엔에 소속된 학생들은 모든 인간의 자연성과 거칠고 야만스러운 면을 명상을 통해 정제시키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인 영재학교에서 공부한 후 성직의 직책을 받게 된다. 요제프 크네히트는 평범한 집안의 소년이었는데, 음악에 재능을 보여 인생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 명인을 만나게 되고, 에쉬홀츠라는 영재학교에 입문하게 된다. 그 안에서도 특유의 천진함과 진지함으로 뛰어난 특징을 보이게 되고, 곧 유리알 유희의 정수인 발트첼로 가서 고등교육을 받게 된다.

 발트첼 시절 많은 동료들을 만나게 되고, 특히 플리니오 데시뇨리와의 두 세상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카스텔리안을 변호하는 입장을 강화해나간다. 그리고 졸업 이후에는 몬테포르트에서 자유로운 연구활동에 전념하면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여 조화롭게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내고, 죽림의 노형을 만나서 중국의 사상들을 경험하고 배운다. 그리고 곧 유희 명인의 눈에 들어 관리로 임명받아 마리아펠스의 베네딕투스 수도원에 파견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야코부스 신부를 만나게 되고, 역사와 종교, 정치에 관한 많은 배움을 얻는다. 수도원에서도 인정을 받은 크네히트는 다시 발트첼로 돌아와서 유희 명인의 뒤를 이어 유리알 유희 명인으로 취임하게 된다. 유희 명인으로서 수많은 업무를 집행하고, 테굴라리우스와 함께 멋진 연례 유희를 완성한다. 그러다 위원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플리니오와의 대화를 끝으로 1부가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2편에서 크네히트는 친구 폴리니오를 우연히 만나고 난 뒤, 카스탈리엔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카스탈리엔에 소속된 명인의 직위를 사임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다. 우선 테굴라리우스에게 명인의 사임 청원서를 작성하게 하고, 그 청원서를 본부로 보내지만 거절의 답변을 받는다. 예상했던 답변을 받은 크네히트는 마침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본부 수석인 알렉산더 명인을 찾아가 사임을 요청하고, 그 이유에 대한 그동안의 개인적인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알렉산더 명인은 크네히트의 뜻을 전부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명인직의 사임을 받아들인다. 크네히트는 명인으로서 누렸던 모든 것을 반납하고, 또다시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폴리니오의 집으로 찾아간다. 크네히트는 폴리니오의 어린 아들인 티토를 제자로 맞아 교육을 하기 위해 높은 산의 호숫가에 있는 산장에 홀로 여행을 떠난다. 산장에서 티토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찬 얼음물에 수영하러 뛰어든 티토를 위해서 같이 물에 뛰어들지만, 갑작스러운 여행으로 힘에 부친 크네히트는 차가운 물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1부에서 나오는 유년, 청년시절의 크네히트의 삶은 말 그대로 매우 모범적이고 귀감이 될 만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고되고 벅찬 일이 생길 때에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특유의 명랑함을 잃지 않고 받아들이고 한계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명랑성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단어인 것 같다. 어떤 불행 속에서도 감정이 자신을 잡아먹게 놔두지 않고, 천진한 명랑성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 이러한 명랑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순진무구함도 아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상황을 금세 유쾌하게 전환할 줄 아는 겸손한 내공인 것이다.


 2부에서 중년에 접어든 크네히트는 카스탈리엔 속에서 고통, 번뇌, 갈등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야만스럽다고 생각한 카스탈리엔 바깥의 사람들에게서도 그동안의 편협함을 버리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크네히트가 두 세계를 합일하는 과정이 묘사되는데, 카스탈리엔에서는 금기시됐던 것을 깨뜨리고서도 카스탈리엔의 정신을 잃지 않아서, 이로써 그가 다른 유리알 유희 명인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적인 역사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마지막 크네히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예기치 못한 상황 속 죽음이어서 참 안타까웠지만, 크네히트의 삶의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죽음 또한 또 다른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세 편의 이력서에서는 크네히트 스스로를 가상의 인물로 투영시켜, 그가 생전에 바라는 이상적인 관계와 삶에 대한 태도를 끊임없이 드러낸다. 특히 양 극단의 '합일'을 '성숙'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있다.




 

 유리알 유희는 큰맘 먹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읽는 과정이 힘이 많이 들었다. 일단 서문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이해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고, 크네히트의 전기가 시작되면서도 한줄한줄에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있어서 그것들을 흡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작품을 읽는 동안 머리를 꽤나 써야 했기 때문에 인내심이 많이 필요했지만, 완독을 하고 나니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보다 나의 사고가 조금은 유연하게 변한 것도 같다. 아직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유리알 유희가 어떤 것인지 감으로 익힐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생각의 합일화이다. 수많은 생각과 지식을 한 개의 중심으로 통하게 하는 점이 바로 유희인 것 같다. '모든 학문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학문을 유기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시도가 바로 유희가 아닐까 한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크네히트의 유희에 대한 사랑이 참 많이 느껴졌고, 사소한 것에도 열린 마음으로 배움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크네히트의 삶을 통해, 현대인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수많은 가치관들의 충돌과 그에 따른 혼란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것들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들을 통합해서 볼 줄 아는 사고를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삶에 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균형있고 조화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의 얼굴은 자연스레 여유와 품위가 묻어 나올 것이다.


 크네히트가 한 말 중에서, ''각성'에서는 진리와 인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실과 그 현실의 체험, 그것을 살아내는 일이 문제였다. 각성했을 때 사람들은 사안의 핵심이나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상태에 대한 자기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현하거나 감수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때 어떤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을 하게 되며,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떤 결심을 할 때,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이 세상이 참으로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데,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믿음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삶은 누군가에게는 힘든 투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즐거운 한 단계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고,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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