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냥 Oct 25. 2021

제라늄

브런치에 입문한 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때 그 첫 마음이 흔들리다 결국 나태지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마치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소원해진 화분 같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나와의 지겨운 싸움에 비긴 채 오늘 아침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울한 하루 끝에 나를 반겨주는 귀여운 반려식물들. 가을이라 건조한가 싶어 물을 자주 줬는데 역시나. 결국 짐작했던 과습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장 놀랐던 건 계속 어린잎이 피어나고 있던 제라늄. 나와 벌써 4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튼튼했던 제라늄이 어느 순간부터 무성했던 잎을 자꾸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항상 예쁜 빨간 꽃을 보여주어서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아니 방심했다. 나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자꾸만 자신을 봐달라고 소리 없이 버티는 동안 제라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꾸만 잎을 떨구는 제라늄을 만져보다가 말랑한 가지를 보고 너무나 놀랐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미 썩어버린 가지 두 개. 바로 잘라내고, 한참만에 분갈이를 해줬다. 답답한 플라스틱 화분에서 시원한 토분으로 이사를 해줬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주 보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제라늄의 상태를 알아채서 다행이다. 조금만 더 힘내서 추워지는 날씨 같이 견뎌보자꾸나... 힘내라고 가습기도 꺼내 옆에다 틀어주었다.


최근에는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특히 일이 너무나 꼼꼼함을 요하는 것들의 연속이어서 집에 오면 말 그대로 녹았다. 그냥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거다. 엊그제 백신 맞고 2.5일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만 바라보는 이 작은 식물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는 게 참 미안할 따름이다. 식물은 조용하지만 분명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다. 집에 같이 있으면 참 위안이 많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자꾸만 게을러지는 것도 천성인가 싶다. 몸도 마음도 자꾸만 지치는 요즘, 하릴없이 글을 끼적여본다. 지난 1년의 시간이 정말 꿈처럼 빨리 지나가 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무사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