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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Apr 21. 2021

이렇게 중요한 걸 이렇게 대충 한다고?

스타트업에서 종종 해야 하는 주먹구구식 일처리

인력이 적고 변화가 빠른 - 더 정확히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업무를 쳐내야 하는 -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정말 중요 업무임에도 어쩔 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때가 많습니다. 몇 가지 스토리만 간단히 풀어볼까요?


교육과정 기획서가 없는 교육회사

교육 스타트업에 다닐 때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기획서였습니다. 저희 회사는 일반인이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강의를 열 수 있는 플랫폼이었는데요. 이 과목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강의인지,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는지, 강의를 듣고 나면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실습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강사는 수강생으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지, 강사의 경력은 어떤지가 정리된 기획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강사님은 미팅 때마다 포스트잇에 관련 내용을 적어오시고, 어떤 강사님은 말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고 그랬죠. 뭐 기획서 없을 수도 있죠. 당장 없어도 차차 만들어가면 되지요. 문제는 강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며 강의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담당했던 담당자 자신도 기획서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만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기획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항목들을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짜서 기획팀에 전달하였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마케터는 상세페이지 내용 작성할 때마다 기획 담당자를 통해 강사에게 주요 내용을 문의해야 했고, 디자이너 또한 강의 썸네일을 비롯한 홍보용 자료를 만들 때마다 강사 사진, 포트폴리오 등을 번번이 요청해야 했습니다. 교육 과정을 기획하고 강의를 제작하는 단계에서 꼼꼼하게 강의 내용과 강사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둔다면 마케팅을 준비하는 과정도 불필요한 연락 단계 없이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겠죠.


공간 대표 사진이 쓰레기통 사진?

초기 단계의 공간 예약 플랫폼에서의 일입니다. 저희 서비스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을 예약할 수 있었죠. 유저가 공간을 예약할 때 가장 많이 확인하는 것이 바로 공간의 사진입니다. 가보지 않은 공간이어도 사진을 보고 공간의 규모와 시설 등을 파악해 내 상황에 딱 맞는 공간을 예약할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사진은 공간 예약 플랫폼에서 꽤 중요한 요소인데요. 공간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직접 사장님용 애플리케이션에서 사진과 공간 소개를 작성하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한 QA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장님은 이 공간이 음악 녹음실인지 뭔지 알아볼 수 없게 공간의 대표 썸네일을 쓰레기통 사진으로 선택해 놓으셨더라고요. 이렇게 부적절한 사진을 활용할 경우 유저는 그 공간에 대한 나쁜 첫인상을 갖게 되고 예약은커녕 상세페이지까지도 진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앱에 등록된 모든 공간의 사진을 점검하며 개선이 필요한 공간들을 리스트업해 C레벨 임원들에게 전달했으나, 임원들은 사진에 대한 중요성을 낮게 두었는지 개선의 액션이 없었습니다. (당시 공간 사장님에 대한 영업은 C레벨에서 맡고 업체 사장님들과 직접 소통하며 관계를 유지했거든요) 안타깝지만 유저들은 안 좋은 사진이 등록된 업체에는 관심을 안 보이고, 업체 입장에서는 예약이 안 들어오니 굳이 저희 어플에 공간을 등록해놓을 필요가 없고 플랫폼을 떠나게 되는 거죠. 유저가 공간의 사진만으로 예약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유저는 스케줄, 위치, 시설, 가격, 사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예약할 공간을 선택합니다. 공간 사장님 입장에서 개별 유저의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은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합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는 공급자 쪽 고객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수시로 개선 방안을 안내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하죠.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게 항상 좋지만은 않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걸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죠. 소수의 인원으로 다양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개선할 수 있어 보이는 문제도 바꿀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다 보면 분명 개선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거예요. 아니면 회사가 망해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우도 있다는 건 비밀. 저 말고 스타트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이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하셨을 겁니다. 이런 고민도 다 회사와 내 서비스, 그리고 내 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생기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이런 고민들이 빛이 나는 순간이 분명 올 거예요. 그때까지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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