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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Jan 15. 202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끝나지 않을 차별과 소외

SF소설이라고?


책 소개를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제목과 분홍빛 표지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줄곧 이 책을 눈물 콧물을 쏙 빼는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해왔었죠. 지인의 추천으로 책 소개를 보던 중 "SF소설"이라는 말에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 SF소설을 잘 읽지 않습니다. 제가 여태껏 읽었던 SF 소설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정도 밖에 없는 듯해요. SF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내용이 너무 어렵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거부감과 전에 읽었던 책 (또는 봤던 SF 영화)랑 비슷한 내용이겠지 하는 지레짐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다릅니다. 과학 또는 기술 보다는 오히려 그 속의 사람들이 더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7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각 편의 중심인물은 모두 차별이나 소외를 겪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외모 때문에, 비혼모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회에 팽배한 가치관과 다른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화학물질로 강화 인간을 만들고, 우주의 웜홀을 통해 다른 행성계를 여행하고, 죽은 사람의 뇌를 저장하고.. 이런 첨단 기술로 가득한 세상이 와도 차별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편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7편의 단편이 모두 흥미롭지만 저는 다음 4편을 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각 편의 구절 몇 가지를 나누며 이번 글은 마치도록 할게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재경은 수많은 소녀들의 삶을 바꿨을 것이다. 최후에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재경이 바꾸었던 숱한 삶의 경로들이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다. 가윤이 바로 그 증거 중 하나였다. 가윤은 한때 재경을 보며 우주의 꿈을 꾸던 소녀였고, 이제 재경 다음에 온 사람이었다.


<감정의 물성>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관내분실>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그래도 엄마는 분실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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