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 쉐어하우스 생활을 돌아보며
내 마지막 만찬이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ENFJ,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는 엠비티아이가 무색할 만큼 사실은 외로워야만 하는 사람이다. 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집착이 크고 혼자 있는 시간을 따로 계획할 정도로 독립에 대한 욕구가 크다. 누구랑 함께 산 경험은 짧았고, 오히려 설레는 마음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2020년 3월, 내 일상은 낯선 사람들과 일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 5일 낯선 사람들이 있는 회사로 출근해야 했고, 어쩌지 못할 일들을 맡아서 벅차게 해치워 나갔다. 편히 쉬어야 할 곳에 돌아와도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고 맞춰나가는 과정이 계속됐었다. 낯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숨기는 게 더 많은 성격 탓에 문제없이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 일상에서 사실은 너무 외로웠다. 다가가면서도 밀어냈다.
불면증이 심해진 때도 이때 즈음이었다. 아무리 하루 종일 일에 집중하고 혼이 빠진 상태로 퇴근을 해도 정신은 잠들지 않았다. 육체적 피로를 일부러 만들어야만 했다. 퇴근하면 따릉이를 타고 낯선 마포구를 헤맸다. 페달을 밟을 힘이 더 이상 없을 만큼 지쳐야만 집에 돌아오고는 했다. 그래도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는 잔잔한 음악과 술로 간신히 버텼다. 출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겨우 잠들고, 깨지 않은 상태로 집을 나서야 했다.
절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 밤에 모여 하메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던 날.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던 생을 지나온 그 얼굴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어렵게 말을 이어나가던, 진심을 꺼내놓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녹았달까. 웃으면서 대했지만 숨겨놓았던 내 걱정과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았다. 그 위로는 잠들지 못했던 새벽을 재웠고, 하메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야 이내 잠들 수 있는 습관을 쥐어 주었다. 방문을 꼭 닫기보다는 살짝 열어놓고 잠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존중하면서도 배려하는 모습들. 일명 ‘비밀의 방’ 마약 소파에서 잠든 나를 달래 방으로 들 여보 내기고 했고, 밥도 못먹고 10시 가까운 시간에 퇴근한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아침을 거르지 말라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내어주기도 했다. 좋은 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식탁에 둘러앉아 맥주를 까는 것도 일상이었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을 챙겨주기도 했다. 물론 어떤 이는 우리가 공생하는 곳을 탈출해야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낮은 온도로 시작한 공동생활이 점차 따뜻해졌다.
6개월이 지난 나는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다. 잠들지 못하는 날은 불시에 찾아와 자주 피곤하다. 오히려 8시면 눈이 떠지는 고질병까지 생겨 수면의 질이 낮아질 때가 더 많다. 혼자만의 시간과 자전거 타기는 아직도 꼭 필요한 처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 낯설지 않은 이 집에서 내 불면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깨어있는 밤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사소한 내 습관과 버릇을 기억하고 배려해주는 사람들. 내 예민함이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일부일 뿐이라고 안심시켜줬던 사람들이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고, 여전히 예민하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인연이 스쳐 지나가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한 번쯤 틀려 인연이 머물 수 있다면 이 사람들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