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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Oct 28. 2023

엄마가 달리기 시작하면 아이는 사력을 다해 아프다.

내 삶에 책임을 다하고 싶어





 남편은 이제 조업이 한창이라 거의 집에 못 오고 있다. 휴일이 없으니 이건 주말부부도 월말부부도 아닌 기러기 신세랑 비슷한 상황이다. 와중에 나는 수험 생활을 시작했다. 뭐든 시작하면 숨이 차도록 달려야 성에 차는 성격이라 시작부터 망설인 게 사실이다.

혼자 달리는 게 아니라 두 아이를 업고 달려야 하는 엄마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시작한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수능을 친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할 정도이지만 ‘이건 고등학교 때 배웠는데……’ 싶은 내용들도 눈에 보이고, 잘 모르겠는 답답한 내용도 하나하나 익혀가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나름 묘한 성취감을 준다.


이번 주부터는 좀 더 힘을 내어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지 했는데, 그만 불청객이 찾아와 버렸다.

독감.


둘째는 구토를 하고 이틀을 꼬박 고열에 시달렸다.

칭얼대는 탓에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고 나는 아이를 돌봐야 했다. 행여나 첫째에게 옮길까 노심초사해가며 자꾸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아이에게 수 십 번 호통을 쳐가며 그렇게 꼴딱 이틀을 정신없이 보냈다.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라는 아이의 말에 당장 주말에 여는 병원을 검색해서 달려갔다. 약을 먹어도 열이 잡히지 않고 아이가 자꾸만 늘어져서 독감수액이라는 걸 맞으려고 갔는데, 대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2시간 남짓 기다려서 수액을 맞고 나니 죽이라도 조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조금 마음이 놓였다.


많이 걱정이 되었는지 집에 들른 남편은 다행이라며 다시 일터로 떠났는데, 저녁이 되고 또 일은 벌어졌다.


첫째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열이 난다.

39.3도.

토해놓은 바닥을 묵묵히 닦는 어미의 신세를 한탄할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닦이고 아이를 토닥였다.


“그러길래 손가락 자꾸 빨지 말라 그랬잖아!”

“왜 마스크 쓰라니까 안 쓰고 다녀!”

“엄마까지 옮으면 너넨 누가 돌보냐고!”


첫 번째로 독감을 이 집에 끌고 들어온 둘째에게 호통을 쳤다. 뭐 그러고 싶어 그랬겠나 마는 상황이 답답할 때에 괜히 아이들에게 더 화를 내는 못난 엄마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해열제는 시간 간격을 잘 맞춰서 먹여야 한다.

혹여나 열이 떨어지지 않을 시에는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교차복용 해야 하는데 그것도 2시간 간격으로 시간을 잘 계산해서 먹여야 한다.


그렇게 한 차례 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았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혹시나 또 열이

오르진 않을까, 내일은 일요일인데 고열이 지속되면 병원은 어떡하지 등 생각이 떠다니는 통에 영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다 접고 아이들 옆에 누웠다.


조금 열이 떨어진 건지 곤히 잠들었다.


엄마가 달리려고 끈을 묶으면 귀신같이 아나보다.

그걸 무시하고 진짜 달리기를 시작하면 사력을 다해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렵다.


오늘 밤 내 소원은 하나다.

‘제 멘탈만은 잘 붙들고 있게 해 주세요.’



아무쪼록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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