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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Oct 24. 2023

물고기를 못 만지던 남편은 어부가 되었다

저는 어부의 아내입니다





뱃일도 몇 달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생활 패턴이 잡히면서 루틴 같은 게 생기는 듯하다. 새벽 1시에 출항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집에서 자진 못한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지만,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만큼이나 우리 삶의 희망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믿으면 산다.


진작에 부모님 일을 돕는 게 어떠냐는 주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물고기 못 만져요 허허”


팔딱거리는 활어를 만진다는 게 사실 나도 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남자라고 뭐 크게 다르겠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계가 달리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걸 증명해 버리고야 말았다.




남편이 종종 들려주는 바다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그들만의 전문 용어를 듣고는 나에게 와서 묻는다. 일본어를 전공한 나에게 그게 혹시 일본말인지 묻는데, 완벽하진 않아도 얼추 비슷한 단어를 쓰는 걸 보면 어업에서의 다양한 교류가 있었는지, 혹은 가슴 아픈 역사에서부터 전해져 온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대강이라도 알아먹는 내가 신기해서 그게 또 소소한 재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제는 ‘먹통’이라는 걸 알려줬다.

먹통은 갑오징어를 일컫는다고 했다. 먹물 때문에 먹통이란 별칭이 붙었나 보다. 갑오징어라 부르지 않고 ‘먹통’이라고만 말하는 그는 그렇게 뱃사람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 같다.



물고기 못 만지던 남편이 어부가 된 것처럼,

이웃에 계신 삼촌은 어업을 오래 하셨지만 원래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회를 못 드신다고 했다.

대부분 어부라고 하면 바이킹족처럼 거칠고 식성 좋은 모습을 상상할 텐데 그것 또한 선입견이었음을 깨닫는다.





보통 주말이면 다음 주 일기예보를 확인하는데 남편이 뱃사람이 되고부터는 거의 매일 날씨를 체크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위험하기도 하고 작업에 차질이 생겨서 급작스레 스케줄 조정을 해야 한다.

요즘은 워낙 날씨가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서 매일

보던 일기예보를 시간대 별로 체크해야 할 때도 많다.


그렇게 모든 걸 하늘, 바다, 날씨 요정에게 맡겨야 하는 직업이다.


날씨 탓인지 고기가 별로 없다는 말에 또 한 번 만선을 기도 하는 나도 천상 어부의 아내가 다 되었다 싶다.


모두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며 그렇게 오늘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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