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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Oct 31. 2023

바다에도 어세권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는 어부의 아내입니다




11월이 가까워지자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졌다. 두 아이는 릴레이로 독감에 걸려 나는 예민함이 극에 치닫았고, 뭐 그런 내 마음은 당연히 아무 상관없이 할 일은 늘 그렇게 잔뜩 쌓여있다.


물류 센터 허브(hub)에 엄마의 일상을 비유해 보면 그럴 싸하다. 막히면 그냥 물류 대란이다.

아파서도 안 되고, 정신이 나가서도 안 된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폐인처럼 보낸 것 같다. 독감에 먼저 걸린 둘째가 상태가 호전되어 오늘 등교를 했고, 첫째와 하루를 같이 보내고 있는 오늘은 ‘사람 하나 있고 없고 가 참 크네’싶다. 남편이 회사에 안 가고 죙일 집에 있으면 ’집이 더부룩하다 ‘라는 친구의 말에 새삼 무릎을 탁 친다.


뜬금없이 라면 같은 마라탕을 먹다가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어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바다가 육지라면 우리 식구 손가락 빨아야 하는데 어휴 어휴’

비단 우리 집뿐이겠냐마는 알수록 바다의 세계는 신기하다.


바다에도 육지처럼 ‘x세권’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세권, 학군지, 슬세권 등 육지에는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바다에는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 분명 있긴 있다. 그곳을 나는 ‘어세권’이라 부르기로 했다.


남편이 일하는 어장은 최근에 위치를 옮겼다.

고기가 많이 다니는 길목으로 옮긴 것인데, 이게 다른 어장보다 앞쪽에 위치해 버리면 기존에 있던 다른 어장에 들어갈 고기가 이 어장으로 들어와 버리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어장에는 어획량이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업은 경쟁체제처럼 되어 있어서 어판장에 가면 그날의 어획량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물고기를 팔러 온 어업인들 사이에서는 오늘 누가 많이 잡았고, 누가 못 했는지가 계속 입에 오르내린다고 했다.


농사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잡는 일이 어찌 뜻대로 되겠나. 다 하늘에 맡겨야 하는 일이거늘.

그래도 그 편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은 선장님의 몫이다. 그렇게 어장을 '어세권'으로 옮기면 기존에 있던 어장과 배를 시에 신고하고 감정을 받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연간 어획량을 평균내고 해서 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인 듯했다. 마치 부동산을 살고 파는 것처럼 바다에도 그런 일들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던 일이다.


그리고 배를 구매하게 되면 멀리서부터 배를 직접 운전해서 가져다주는 '길선장'이라는 직업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배로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와야 하니 고되고 힘든 일이라 보수도 빵빵하다. 이건 마치 차를 구입할 때 탁송해 주는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관하겠다.


이처럼 바다에도 육지만큼 다양한 시스템과 체계가 존재한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놀 줄만 알았지. 이런 일들이 존재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살던 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더 그런지 모든 게 재밌는 이야기로 들린다.












오늘은 고기를 꽤 잡았나 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밝다.

매일이 같을 수 없는 일이지만 좋을 땐 '아주 좋다'는 포인트가 또 큰 행복을 안겨주기도 한다.

들쑥날쑥하는 어획량은 내가 손댈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오직 하나다.

그저 매일에 감사하고,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것.

그것만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새삼 반성하며, 남편이 보내준 바다 사진을 보며 지쳤던 마음에 위로가 살포시 내려앉음을 느낀다.


"회 가져가고 있어."

"커피 사다 줄까?"


이 두 마디에 세상 무엇이 부러울까 싶다.

행복은 내 안에 이미 있음을 잊지 말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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