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아내의 은밀한 취미
어부의 아내인 나에게는 비밀공작처럼 몇 년째 꾸준히 하고 있는 취미생활이 있다.
취미생활이라기엔 거창한 것 같으면서도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하자면, 취미생활이란 말이 나의 ‘그것’을 담기엔 너무 가볍다.
어릴 적부터 앞에 나서서 춤을 추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오히려 내성적인 축에 속했는데 20대가 되어 우연히 춤이라는 걸 배우고부터는 무용수의 삶이 궁금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 중에는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춤깨나 추던 그 친구들은 서울에서도 유명하다는 선화예고로 전학을 가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무용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발레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건 둘째를 출산하고부터였다. 첫 시작은 문화센터에서였는데 일주일에 고작 딱 한 번 있었던 그 수업이 나를 살게 했다.
피아노 선율에 속으로 울고 있었고 꿀렁였다는 게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20대 때 춤을 열심히 배웠던 게 여기까지 이끈 건지는 모르겠지만 발레는 늦게나마 내가 ‘춤을 춰야만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갖은 풍파와 고난을 겪으면서 나의 ‘발레‘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았다.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 학원을 등록하고 매일 수련하다시피 수업에 임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속 편하게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되었다. 와중에 참 다행이었던 건, 남편이 명품백은 못 사주더라도 발레 하는 내 모습을 참 많이도 지지해 줬다는 것……
하지만 시댁에도 어디에도 맘 편히 나의 발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곳은 없었다. 아니, 들킬까봐 되려 두려웠다.
발레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타고나면 유리한 부분이 있다. 다들 유연성이 첫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보다 몸의 근육을 잘 인지하고 쓸 줄 아는 것을 바탕으로 발등이 예뻐야 하고 춤이라서 감각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고관절의 가동범위, 턴아웃이라고 불리는데 안짱다리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아무튼 그동안 수업을 들었던 원장님들마다 내게 발레 하기에 적합한 몸이라고(몸매와는 상관없이) 게다가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덕분에 근육도 잘 쓴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칭찬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오랜 기간 발레를 사랑하며 꾸준히 해오고 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썼던 일기에 ‘다시 태어나면 무용수가 되고 싶다’라는 문구를 뒤늦게 보게 되었다.
운동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진짜 예술을 하고 싶어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라는 쑥스러운 고백을 해본다.
40살이 가까운 나이에 무슨 발레리나를 꿈꾸냐 싶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직업 발레리나를 꿈꾼다기보다 그저 아줌마 발레리나이길 바라고 있다. 그만큼 내가 삶에 치일 때도 유일하게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참 감사하게도 독학으로 운동을 하면서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게 지금 발레에 많은 도움을 준다. 악착같이 혼자 공부해 가면서 취득했던 자격증인데 몸을 쓰는 일에 꽤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게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물론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은 아니지만 나의 은밀한 취미를 지원해주는 가장 큰 베네핏 중 하나이다.
발레이야기는 사실 나눌 사람도 잘 없고 해서 늘 갈증이 있었는데 조금씩 글로 풀어보고 싶어졌다.
발레를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나는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내 수중에 돈이 남지 않더라도 뒷목에서부터 등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선이 남아있다면 그걸로도 내 중년은 만족스럽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발레리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