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 아줌마
1인분에 2천 원 하는 떡볶이집이 아직 있다.
바야흐로 2003년.
대학 1학년 때 1인분에 천 원 하던 떡볶이 집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지역에 있지만,
그 근처 큰 마트를 갈 일이 있어 종종
모교 앞을 지나게 된다.
그때마다 참 그리웠던 게 저 떡볶이였는데 졸업을 하고도 한참 뒤 30살 언저리까지 대학원을 다니다가
도중에 결혼해 버린 탓에 학교에 추억을 버려두고 도망쳐 온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아무것도 가진 것 것 없던 나에게 교비로 유학을 보내줬던, 그렇게 미국으로 일본으로 세상 구경을 시켜줬던 학교는 내게 여전히 고마운 존재로 남아있다.
지방대학의 소멸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학교에 종종 들러보면 많은 것들이 변해있다. 새벽부터 늦게까지 공부하던 중앙도서관은 이제는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는 출입이 안 되니까 들어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추억 여행 한답시고 남편과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어보기도 했었다. 웬 나이 든 사람들이 학교에 왔나 싶은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괜스레 눈치를 보게 되기도 하고 재밌는 상황에 기분이 상기되었었다.
대학 1학년이 되자마자 선배들이 데려가줬던 그때의 그 떡볶이 집이다.
바로 옆 건물 귀퉁이로 자리를 옮기셨고, 1인분 2천 원이라는 가격이 놀랍다.
"15년 만에 왔어요."라며 주인아주머니께 말을 건네며 그렇게 딸아이와 서있었다.
얼마 뒤면 이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면서 왠지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조금 슬픈 느낌도 들었다.
예전에는 밀떡이었는데 이제는 쌀떡으로 바뀌었다며 짧게나마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고
그렇게 떡볶이, 순대, 튀김을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떡볶이도 2천 원이고, 튀김도 2천 원이다.
튀김은 수제로 만드시는데 어우 이래서 진짜 뭐가 남기는 남나 걱정이 될 정도이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도 이곳에 들를 수 있게 오래오래 문 열어주시면 좋겠다며 속으로 기도했다.
이 떡볶이를 내가 낳은 아이 둘과 남편과 함께 먹을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수업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친구들과 청춘을 고뇌하던 그때에 먹던 그 떡볶이를 말이다.
딱 그 시절이다.
영화 클래식이 개봉을 했던 때가.
미술을 전공한 센스 있는 내 친구는 어느 날 클래식 개봉했다며 보러 가자고 했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오열하고 감동의 물결을 아주 끌어안고 나왔던 나는 그때부터 클래식 앓이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손예진 앓이도 함께.
그래서 오랜만에 클래식 영상들을 찾아봤다.
그 모든 장면에는 어린 손예진 배우의 모습과 그때의 내 모습들이 함께 비췄다.
그녀도 지금은 멋진 남편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지만 저렇게 앳된 얼굴인 시절이 있었구나 싶고
뭔가 모르게 마음 속이 일렁였다.
눈 속에 별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은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냐를 떠나서
그저 아름답다.
아마 그때의 우리 모두가 그랬을 테지
빗속을 달리는 장면은 뭉클하고 설레면서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어릴 적 그 마음을 다시 꺼내주었다.
현실은 방학 내내 두 아이 밥 챙기랴 정신없는 엄마의 일상이지만
장면 장면이 그저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아련하게만 느껴지는 기분.
요 며칠 떡볶이와 클래식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
절대 마음은 나이는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린다면 남편 손을 꼭 잡고 캠퍼스를 거닐어 봐야겠다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