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_너와 다시 사랑하기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와의 통화에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한 번 전화를 붙들면 1시간은 우습게 지나간다.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아이들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 등을 나누며 결론은 ‘파이팅 하자!’하는 매 번 똑같은 레퍼토리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느낀다.
남편의 몇 안 되는 절친, 평균 통화 시간을 보여준다.
10분.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내가 되레 물어보면 남편은 모른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는 잘 안 한다며……
도대체 그럼 만나면 무슨 얘길 하는지 참 의문이다.
하지만 절친이라고 했다.
힘든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고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입되어 온 게 남자들의 삶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잔뜩 쌓이고 해소되지 못한 채로 또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하는 숙명.
강하게 보여야 해서 누구에게 함부로 조언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고 그래서 고집은 단단해지는데 늘 비슷한 삶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까지……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인지 조차 모르고 살았으리라 생각도 든다.
남편이 집에 오면 나는 오늘 어땠는지를 꼭 물어본다. 묻지 않아도 표정에서 이미 드러나서 나도 지치는 날이 있고, 묻기 전에 신나서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날이 있다.
‘그래도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에게도 행운이야.’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잔소리’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것
‘잔소리를 1절, 2절, 3절’ 하는 것
남편뿐만 아니리 시아버지, 내 남동생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은 남자들은 설명이 짧아서 오해를 사고, 잔소리를 듣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언어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참 다행인데 대부분은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는다.
왜 이렇게 일을 처리했냐 물으면 ‘알아서 할게.’라는 대답이 돌아오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고 결국에는 잘 해내는 모습을 보더라도 그 앞에 속 터지는 과정이 있었으니 좋은 결과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말로 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참 중요하다 싶고 그렇다.
‘알아서 할게.‘ 대신에 ’이러이러하게 이미 해뒀고 이러이러할 거니까 내가 처리할게. 믿어다오.‘
이런 구구절절한 말을 하는 건 그들에겐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져서 아마 단답만 하나 싶다
반면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나는 그래서 일처리
잘한다는 말을 듣는 아이러니.
이게 바로 말로 하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그래서 늘 나는 중간에서 통역자 같은 역할을 한다.
‘알아서 할게.’에 담긴 함축적 의미와 발화자의 현재 심경을 추측해서 설명, 전달하는 일.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려면 멘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인생 선배가 될 수도 있다.
자기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면 멘토를 만나는 일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책을 읽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고……
그렇게 남자들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이 그 마음 안에는 외로움이 크게 자라날 것이다.
결혼해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마저도 조금 해소가 될 진 몰라도 대부분은 혼자 끌어안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나 아이나 똑같다는 말.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몸만 커져버린 남자들의 경우에는 그를 믿음으로 지켜봐 주는 이가 필요하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해내지 못했던 것들, 그로 인해 많이 놓쳐왔던 것들을 이제 와서 챙기려면 아이 키우듯 해야 하는 게 맞긴 하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고, 들어주는 일
잠재력이 많은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 멋지게 성장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따뜻한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불필요한 잔소리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 시대의장군을 키워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