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어부가 되고 나서는 은근하게 내 생활 패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건 바로 남편이 낮에 '집에 있음'이라는 변화인데, 이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나는 이로써 노년에도 부부들이 왜 그리 다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운명이지만 자기 자신과 대화할 시간이 줄어듦으로써 오는 공허함이 마음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스마트폰 때문에 오히려 심심할 겨를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여하튼 나는 남편이 '집에 있음'으로 인해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낮에도 남편을 볼 수 있어 좋았던 마음에서 이쯤 되니 낮에도 내가 나를 만나기 힘드네로 변해 버린, 조금은 개인주의적인 아내의 투덜거림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그와 물리적 거리두리를 선택했다.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서 제일 세련된 도서관으로 왔다. 아니, 잠시 피신했다.
오기 전에 그가 좋아할 만한 닭갈비를 맛있게 볶아두고 청소와 설거지를 말끔히 해두고 나왔다.
도서관에 오려면 자가용으로 20분이나 걸리는 데다가 주차요금도 내야 하고 불편한 일들이 많지만 나는 이곳에서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수정하고, 정리하는 등의 일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이렇게 공간이라는 것이 주는 힘이 크다며 감탄하기도 잠시.
그래도 여전히 '간당'이라며 퇴근 멘트를 보낸 그가 서운한 마음으로 외로이 집을 지키고 있지는 않을지 괜한 걱정을 또 하고 있다.
행여나 아이들이 일찍 귀가하기라도 하면 여러 명이서 나의 행방을 묻는 연락이 올까 봐 그 또한 두렵다.
얼마 전, 친구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기'에 관한 주제로 장장 4시간의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밖에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도 많았지만 결론은 '우리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였는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남편, 아내, 자식들에게 속박되어 일부 자유롭지 못하다는 나의 주장을 친구는 아니라는 말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말하는 자유로움의 의미를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은 나를 막아서거나 붙잡지 않는다. 단지 내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럼 그 불편한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느냐라며 별별별 이야기를 그렇게나 길게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꾸준히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빠르게 마무리를 지었고, 그렇기에 갈 길이 멀다며 다시 힘을 내보자고 했다.
조금 더 항변을 해보자면 내가 집에서보다 도서관에서 글이 더 잘 써진다는 점을 보태어 본다.
이렇게 가끔은 물리적 거리 두기가 있어야 내가 나를 더 기특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게 됨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 그 혹은 아이들에게 배로 돌려줄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러하다.
아직은 새 장 밖으로 나가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초보이지만, 언젠가는 가시덤불 속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만렙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늘 품고 있다.
어쨌거나 오늘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느꼈고, 사랑을 충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로 이런 내 마음을 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