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끊었더니 100점을 받아왔다.

그 어렵다는 내 아이 가르치기

by 홍은채




“학원 다니기 싫어!”


자꾸만 숙제를 미루던 둘째는 다닌 지 겨우 서너 달 된 학원인데 다니기 싫다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워낙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여느 초등학생들처럼 로블록스 게임이라면 아주 그냥 흥분의 도가니탕이 되는 아이였다.


억지로 무언갈 시키면 절대로 안 하는 고집 있는 아이 었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여러 번 설득을 했다.

그러면 일단 다녀보겠다는 대답을 겨우 듣고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예상했듯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아이의 공부 상태.


처음 학원을 보내고는 85점, 90점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아왔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았고, 그저 즐겁게 공부습관을 들일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게다가 성적도 많이 오른 거니까 나로서는 학원 보내길 잘했다 싶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숙제하기 싫다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첫째의 응석도 받아주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둘째까지 이러니… 그런 게 힘들어서 학원을 보낸 건데 끝이 없다 싶었다.


며칠 씨름을 하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큰 결심을 한다.


“너 엄마랑 공부해 볼래? “


“응! 좋아 좋아!”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랑 공부하고 싶은 마음보다 학원을 당장 안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더 기뻐한다는 것을……


마침 추석 연휴도 길었고, 그 달의 마지막 주에 일주일 동안 여행계획도 있었기에 우선 학원을 쉬면서 엄마랑 체계를 잡아보자고 했다.

단,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학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조건을 달고.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왜냐하면 첫째를 가르치다가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앉아봐’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고, 가르치기 시작하면 엄마는 말이 너무 많다는 둥 투덜대고 그 끝은 다 때려치우자가 되었던 악몽 같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식 명칭부터 정했다.

이름하야 ‘은채 공부방’


학교 마치면 바로 집으로 올 것.

그렇게 2시부터 우리의 공부는 시작되었고, 나는 오전에 수업 준비와 프린트물 복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첫 번째 철칙은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어서 오세요 고객님^^”하며 맞이한다.


낯간지럽다고 “아~하지 마~~” 라면서 입은 웃고 있다.


두 번째 철칙은 진도에 급급해하지 않기

수험 생활을 해봐서 나는 시험을 잘 치는 방법을 많이 연구했었다. 주워들은 것도 많았는데 그걸 이렇게 써보나 싶었다. 기출 무한반복만이 살 길이다. 그 말을 참 많이 들었었지. 다양한 문제를 살살 풀리되, 반복학습을 하며 복습을 도왔다.


나름의 다양한 철칙이 생겼지만,

그중 제일 중요한 건 ‘공부에 목숨 걸지 않기’, ‘시간에 집착하지 않기’였다.


(다른 이야기들은 차차 풀어나가기로 하고)


그렇게 아이는 ‘은채 공부방’ 시작 이후,

반에서 혼자 100점을 맞은 거다!



‘와아, 이게 되네?’


그 이야기는 친구들에게도 알려지고 아이 친구들이 ‘은채 공부방’에 등록하고 싶다고 성화랬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시간당 50만 원’이라는 말로 거절했다. 물론 당연히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공부를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고도의 심리전인지를 알았기에 여럿을 가르친다는 건 아직 내게는 무리였다.




아이에게 온전히 맡겨두는 척 나는 책을 읽으며 곁눈질


그 후에 추석, 여행이 연달아 있었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95점이라는 점수를 받아왔다.


이렇게 되고 나니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어디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내 일상은 좀 더 바빠졌지만 아이는 엄마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걸 좋아하는 눈치였다.


“엄마!!!!”

오후 2시가 되면 아주 큰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들어온다.


오늘도 고객님 맞을 준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0년만 딱 하고 은퇴하겠다는 야무진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