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과달루페 네텔 지음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과달루페 네텔 지음 최이슬기 옮김 바람북스
주인공 라우라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아무 부담 없이 연애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비혼 여성이다. 라우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 이네스(이네스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페미니스트 이름)를 맞이하는 친구 알리나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아들 니콜라스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옆집 여자 도리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라우라는 집 베란다에 둥지를 튼 비둘기 가족을 쫓아내려다 실패하고는, 오히려 비둘기 부모가 어떻게 새끼를 먹여 살리는지 궁금해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아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네스와 니콜라스에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죽을 거라던 이네스는 엄마 젖을 찾아 살아보려 애쓴다. 옆집 아이 니콜라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 가져주는 라우라를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장애아와 그를 돌보고 지켜보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고통받는 여자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너무도 많은 아픔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아픔을 견뎌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풀어낸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 아픔에만 빠져있지 말자. 주변을 돌아보면 내 아픔을 들어주고 손 내밀어 줄 이가 한 사람은 꼭 있다. 또 나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아픔에만 빠져있지 말자. 그 순간에도 기쁨이 있다. 또 나는 살만하다고 내 삶 속에만 머물지 말자. 한 발자국만 내디뎌 보자. 서로 한 번만 손 내밀어 보자.’
힘겨운 내 삶에 손 내밀어 준 이들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있었던가?
책 속에서 나를 깨운 문장들
잠든 아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응시하는 것이다. 아기의 부드럽고 평화로운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평온함과 경외감이 교차한다. 내 눈앞의 아기를 바라본다. 아기의 느긋하고 말캉한 얼굴과 젖이 흘러내리고 있는 한쪽 입꼬리, 완벽한 눈꺼풀을. 그리고 매일 세상의 모든 요람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 중 하나가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마치 우주에서 밤의 어둠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별들 사이로 사그라드는 하나의 별처럼 소리 업이 숨을 거두고,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혼란도 야기하지 않는다. 아기의 어머니는 평생토록 슬퍼한 것이며, 가끔은 아버지도 그럴 것이다. 남들은 놀랍도록 쉽게 체념하며 그 죽음을 받아들인다.
11쪽
자기 자식이 얼마난 살 지를 아는 어머니는 없다. 자식은 그저 우리가 빌려온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대여기간은 몇 시간부터 몇 십 년까지 다를 수 있다. 이네스의 경우는 극도로 짧을 것이다.
90쪽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부르는 단어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부르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아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이전 세기와 다르게, 우리 시대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 여긴다. 너무나 두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 그런 일일 것이다.
95쪽
”현재를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단 일주일이라 해도 앞서 계획하지 마세요. 따님은 지금 건강하지만, 뇌는 언제라도 멈출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머지 기관들도 그렇게 될 겁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가능한 만큼 즐기세요.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세요. “
151쪽
도리스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니콜라스는 그녀의 아들이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자신을 학대했던 남편을 기억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 새끼는 죽었고, 어떤 의미로는 그녀가 운이 좋았지만, 그의 폭력은 아들을 통해 아직도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196쪽
옮긴이의 말
1648년 혹은 1651년,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의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아홉 살의 나이에 남자 옷을 입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던 그 아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읽고 쓰기 위해 수녀의 길을 택하고, 명성 덕분에 궁에 입성하여 통치 권력의 후원을 받고 부왕비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가 된다. 그녀를 부르는 목록은 길다. 천재, 멕시코의 열 번째 뮤즈, 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스트, 그리고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여자’,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라 크루스.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문학동네 북클럽 '독파 챌린지'에서 앰베서더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연말까지 제가 독파 챌린지에서 읽은 작품들을 한 달에 한두 번 브런치 스토리에도 올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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