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용기를 내야 하나?
지난 추석 전날, 남편이랑 정서진시장에 갔습니다. 물가가 많이 올라 예전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훨씬 북적거렸습니다. 과일과 전 거리는 다 마련해 두었고, 생선과 나물은 형님이 준비하기로 했기에 그날 시장에서 살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장에서 꼭 사야 할 것이 있었기에 새벽부터 서둘러 갔습니다.
예전에는 시장에 가면 가게마다 주는 까만색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다녔지요. 장바구니를 가지고 가도 상인분들은 굳이 굳이 그 까만 봉지에 담아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거절 못 하는 성격에, 속으로는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도 그 봉지들을 받아 들고 와선 처치 곤란해서 힘들어했습니다.
이제 저는 용기(勇氣)를 내서 말합니다.
“봉지는 주지 마세요!”
그리고 가져간 용기(容器)를 내밀며 다시 말합니다.
“여기 담아주세요!”
별것 아닌 말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요?
그날은 어떤 용기에 어떤 것들을 담아 왔을까요?
저희 시댁은 명절 상에 꼭 머리 있는 닭을 써야 합니다. 의미는 잘 모르지만, 시어머니의 원칙 아닌 철칙입니다.
한참 전에는 시장에서 머리가 있는 생닭을 사다 집에서 찌거나 삶아서 썼습니다. 몇 해 전인가, 어머니가 이젠 좀 편하게 지내자 하셔서 닭집에서 통째로 튀겨주는 닭을 상에 올렸지요.
유레카!
너무 기뻐 쾌재를 불렀지요.
하지만, 통닭집에서는 1차로 튀긴 닭을 종이봉투에 담고, 2차로 비닐봉지에 다시 넣어 줍니다. 해마다 명절 장을 보고 나면 봉투와 상자들로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골치가 아팠지만,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고민 끝에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가장 큰 스테인리스 통을 꺼냈습니다. 김장 김치를 담을 정도 크기의 커다란 통을 내밀고,
“여기에 담아주세요~~.”
했더니,
“여기요...? 네..”
하면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통에 종이를 한 장 깔고 튀긴 닭을 담아주십니다.
명절이라 미리 튀겨 놓았기에 닭은 다 식어있었습니다. 통을 받아 들고 뚜껑을 잘 덮은 뒤에 가져간 바퀴 네 개 달린 장바구니에 살포시 내려놓고 굴려가며 다른 가게로 향합니다.
또 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부입니다. 다른 전 거리는 미리 사두었지만, 두부는 꼭 전날 시장에서 삽니다. 왜냐구요? 시장에서 파는 두부가 큼직해서 상에 올리기 제일 좋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이것도 그냥 미리 포장해 놓은 두부를 사서 썼습니다. 그리곤 집에 와서 플라스틱 통을 버리면서 또 난감해했지요.
두부를 사려면 어떤 용기?를 내야 할까? 마음속에서 부끄러움과 귀찮음이 한꺼번에 속삭였습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그냥 대충 하자. 명절엔 바쁘고 힘들잖아’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평들을 토닥토닥이면서 싱크대 장을 뒤적여 밀폐용기 중에 제법 큰 녀석을 꺼내서 데려왔습니다.
주인장에게 두부를 한 모 달라고 하니, 전처럼 플라스틱 통에 담아 놓은 놈을 하나 주려고 합니다.
그때 가져간 통을 용기 있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말했지요.
“여기에 담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네!”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시네요. 그리곤 두부판에 있던 그래서 더 신선해 보이는 두부 한 모를 제가 가져간 통에 담아줍니다.
예전에는 장바구니나 그릇을 내밀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위생상 안 된다고 꼭 비닐에 담아주시던 상인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장에 가보니 그분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용기 내어 용기를 조심스럽게 내밀면,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담아주십니다. 저는 웃는 얼굴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발합니다.
남편과 저는 장바구니와 용기를 들고 기분 좋게 주차장으로 옵니다. 그저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산 것뿐인데, 내가 무언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용기를 낸 보람이 있습니다.